탄핵사태가 마무리되고 대통령이 돌아왔다. 회한과 통분의 두 달이었지만,숨고를 새도 없이 밀린 일 챙기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경위야 어찌됐건 불행 중 다행이다.게다가 총선에서 여대야소의 선물까지 받았으니 금상첨화격이다. 그런데 사람들 눈초리가 그리 여유롭진 않다.돌아온 대통령이 다수당의 근육으로 무얼 어찌할지,기대와 걱정이 반반이다.대통령 자신이,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대통령 공백이란 초유의 사태를 차분히 대처한 국민에게 신뢰를 보냈지만,그 시민들은 이제 대통령이 두 달 남짓 권한을 대행했던 총리의 모습을 다소간이라도 닮아달라고 주문한다. 모두 입을 모아 이젠 민생에 주력해 달라 하고,만인이 다양한 주문을 내놓았지만,지난 15일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으로 대통령은 할 말을 다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야당 일각에서 헌법재판소가 조목조목 질타했던 위헌,위법사실에 대해 구체적 사과가 없었다고 힐난도 했지만,분명 사과는 한 것이다. 오기를 부린다며 그 오기를 꺾겠다고 덤비는 것도 잘못된 오기이긴 마찬가지다. 야당도 이제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 한다.국민 대다수가 상대방을 헐뜯고 모욕하고 말꼬투리를 잡는 정치,아니 정치과잉의 구태를 이제 더는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민생을 돌보고 정책으로 승부하라고 요구한다.다행히 야당도 달라지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국민들 가운데 건강한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다소라도 희망을 추스를수 있을 지 모른다.대통령은 임기동안 성실히 직무를 수행할 것을 다짐했다.상생의 정치를 강조하며 민생,경제를 챙기고 시장개혁,정부혁신 등 국정과제에 매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제는 새로운 정치를 이끌어갈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까지 고백하기도 했다. 문제는 실천이다. 돌아온 대통령이 할 말을 다 했다면,그리고 그 진심을 받아들인다면,이제 실천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걸림돌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나라당에서 배신자로 낙인찍은 인사에 대한 총리 지명문제가 그렇고,당장 코앞에 닥친 재보선이나 주한미군 차출과 이라크 파병 문제도 그렇다. 분명한 것은 국민들이 한나라당이 세 번이나 공천했던 그 인사가 배신자라서 총리자격이 없다거나 무능하다고 여기지도 않지만,마찬가지로 굳이 그를 총리로 지명해 탄핵과 총선으로 엉겁결에 소수당으로 전락,심리적 공황에 빠진 한나라당을 자극할 필요가 있는지,또 왜 하필 이 시점에 그런 일을 시도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잠시나마 정쟁의 불씨를 피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번만이 기회가 아니다. 이젠 좀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 시장과 우방들,그리고 국민이 돌아온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것이 안정과 예측가능성,일관성이라면 그 일관성은 국가정책의 일관성이지 정쟁이나 오기의 일관성은 아니다.민생 문제도 정작 고통받는 서민과 기업의 어려움을 직시하지 못하면 해결하기 어렵다. 개혁을 모면하려는 의도도 물론 없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워낙 불황의 늪이 깊고 전망이 어둡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정책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탄핵의 고통은 대통령만 겪은 게 아니다. 국민도 정치권과 함께 전대미문의 충격을 받았다.그 와중에 범국민 수준의 공동학습이 이뤄졌다.이제 공동학습의 시너지 효과가 나올 차례다. 새로운 정치지형에 돌아온 대통령은 좀더 고차원적이고 거시적인 일에 매진해야 한다. 남북관계와 동북아 안보환경의 조향,경제회복과 국가경쟁력 제고,국정시스템의 선진화,사회갈등의 조정,지방분권의 정착 등 국가 전체의 진운을 좌우하는 숙제들이 밀려 있다. 역대 여느 대통령보다도 명석한 두뇌를 가졌고, 역설적이지만 탄핵기간 충분한 자기성찰과 학습의 기회를 가졌으니 이제는 정말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링컨이나 드골 등 외국 대통령들을 본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독자적인 스타일과 비전을 만들어 유비쿼터스 한국에 걸맞은 디지털 리더십을 개척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먼훗날,인간적 결함도 적지 않았지만 멋지고 현명한,한국 민주주의의 황금기를 연 한국의 대표적 대통령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joon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