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재계의 관계가 갈수록 심상치 않다. 정부는 정부대로 개혁적 시장정책을 밀고 나가겠다며 대기업들을 압박하는 각종자료를 내놓는 반면, 재계는 이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을 넘어 반박에 나서는 것은물론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잇따라 `유감'을 표명하는 등 사사건건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10일 정부와 재계에 따르면 전경련은 이날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행사 허용 이후이들이 계열사 지배력 확장수단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주장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받는 기업집단이 증가했다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은 것으로기업실상을 왜곡시킬 우려가 크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지난 6일의 공정위 자료에 대한 반박에 이은 두번째 `전투'다. 당시 전경련은 공정위가 발표한 `1988-2003년 대기업 집단의 투자행태 분석'에대해 2000-2001년 대기업집단의 평균투자율이 해당 산업의 평균투자율보다 낮은 것은 98-99년 정부가 대기업의 부채비율을 200%로 낮추도록 강요함에 따라 기업자원대부분을 부채비율 축소에 투입, 투자여력이 급격히 떨어진 때문이라며 반박했다. 최근 정부가 전향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에서도 재계는 정부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경제5단체장들은 5일 공동 명의로 발표한 `비정규직 논의에 대한 경제계입장'을통해 "총선 이후 노동계가 기존의 요구조건을 강화시키며 공론화하고 있고 올해 단체교섭의 쟁점으로 대두됨에 따라 비정규직 문제가 경제회생의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의에 불편함 심기를 드러냈다. 이수영 경총 회장은 10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중 3만2천여명을 공무원 또는 정규직화 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한 것과 관련, "비정규직문제는 공공이나 민간부문이나 같은 사안인만큼 이 정책을 추진할 때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지 등을 경영계와 함께 논의했어야 한다고 본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또 최근 월례회동에서 경제5단체 부회장들은 "정부정책의 우선순위는 기업투자촉진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맞춰져야 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것 같아 유감"이라며 "금융회사의 의결권 축소에 반대하며 출자총액규제 폐지와계좌추적권 재도입 시도 철회를 촉구한다"며 정부 정책에 정면으로 반발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재계는 수동적인 사후 대책에만 머물지 않고 보다 적극적인`자기 방어책'을 마련해 정부와의 기싸움에서 주도권을 뺏기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경제5단체가 연합해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재계의 목소리를 내는 `대(對)국회 로비'를 강화하고 시민단체 수준의 `강력한' 의정평가도 적극적으로 수행해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보호할 방침이다. 또 투자를 막는 요인을 없애고 각종 경제현안의 신속한 해결을 위해 정부,정당,국회 등을 대상으로 공동 설명회를 개최하는 것도 재계의 중요한 `자기 방어'다. 그러나 재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입장은 여전히 강경하다. 이동걸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이 한 모임에서 "최근 보수 집단이 말하는 시장경제는 기득권층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반칙을 정당화하려는 그들만의 시장 경제"라며 "합리적 원칙을 위한 정부의 최소한의 노력이 급진적 개혁으로 비쳐지는 것은 그만큼 기득권의 뿌리가 깊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비판한 것은 정부의 기류를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상당기간 정부와 재계의 갈등이 지속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경총의 최재황 정책본부장은 "현재 경제가 너무 어려운 만큼 경제를 살리는 쪽에 정책의 포커스를 둬야 한다는 것이 재계 입장인 반면, 정부는 어렵더라도 개혁을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금감위나 공정위가 현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고탁상공론에만 매달린다면 경영계와의 마찰은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남권기자 sout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