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어머니..정명희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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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hjung@krict.re.kr
내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는 뇌질환,그 중에서도 알츠하이머병이다.
일반적으로 치매라고 통칭하는 이 질병은 이제 사망의 4대 원인 중 하나가 될 정도로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과 이 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는 하는데,그럴 때면 늘 10여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이 생각난다.
젊은 나이에 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내시고,온갖 어려움 속에서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키워 오셨던 어머니였다.
학교 문턱은 밟아보지도 못하고 시골에서 농사만 짓다가 시집 오셔서 시아버님께 한글을 배우셨다는 어머니.
손윗동서와 함께 배웠는데 늘 당신이 뛰어나셔서 시아버님의 아낌을 받으셨다고 두고두고 자랑하셨던 어머니.
빼어난 기억력과 뛰어난 판단력,그리고 사람을 끄는 언변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어머니를 김 박사님이라고 불렀다.
내가 독일에서 학위를 받고 오자 이제 우리 집안에 두 번째 박사가 탄생했다며 한껏 웃으셨던 어머니.
그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달 전부터 치매를 앓으셨다.
귀국해서 처음 몇 년간이 내가 어머니와 단둘이 오붓하게 살았던 유일한 시간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어머니에게 치매 증세가 시작된 것은.
그리고 그토록 활기찬 정신의 소유자였던 어머니가 치매를 앓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물론 노화로 인한 뇌 기능의 약화가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외로움 때문은 아니었을까?
젊은 나이에 돌아가셔서 큰 그리움으로 남아 있던 지아비 곁으로 가실 날만을 기다리시던 어머니.
그 그리움이 병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었을까?
차라리 언니나 오빠네 식구들 곁에서 손자들과 함께 사셨더라면 일상의 부대낌은 힘들었겠지만,그래도 그 삶이 나와 함께 보낸 무풍지대 같은 생활보다는 더 건강하고 인간답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치매를 앓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자책을 수없이 해봤다.
어머니의 치매는 돌이켜 보면 다른 극심한 병례들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경미했다고 생각된다.
우리들만 보시면 젊은 시절이 그리운지 아니면 당신의 자식들을 너무 사랑하시는 건지 우리 여섯 식구만 함께 살자고 졸라대시던 어머니.
이제는 아버지 곁에 누워 계신다.
아마도 행복하시리라.
하지만 난 괜스레 심술을 부려보고 싶다.
엄마,막내딸 떼어놓고도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