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 정만철(주진모)은 두 집 살림을 한다. 새벽 세 시에 본처 명순(서영희)네로 퇴근해 잠을 자다가 명순이 출근하면 둘째 아내 정애(송선미)네로 이동해 다시 잔다. 기막힌 거짓말로 "양다리"를 걸친지 1년 남짓 될 무렵,우연히 탈옥수를 검거해 시민영웅이 된다. 신분이 탄로날 위기에 처한 그는 거짓말로 숨기려고 하지만 상황은 점점 꼬여만 간다.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연출했던 김경형 감독의 신작 '라이어'(제작 씨앤필름)는 앞뒤의 어긋난 맥락을 짜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야기로 웃음을 주는 코미디다. '런 포 유'란 영국 연극을 원작으로 삼았지만 우리식으로 만든 스토리에 배우들의 색다른 연기로 윤색했다. 이 영화는 일상에 깊숙이 침투한 거짓말의 정체를 되새겨 보도록 이끈다. 모든 등장 인물들은 직·간접적으로 거짓말의 공범이다. 두 아내는 사랑의 환상에 마취된 나머지 남편의 실체를 직시하지 못한다. 기자(임현식)는 모든 거짓말을 진짜로 받아들이고 형사(손현주)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정만철의 친구(공형진)도 기회주의적인 속성으로 거짓말에 편승한다. 모두가 진실을 외면한 이유는 거짓말의 마취효과 때문이다. 진실은 보잘 것 없지만 거짓은 화려하고 세련됐다. 진실의 상징인 첫번째 아내는 강북에서 초라하게 살지만 거짓을 대변하는 두번째 아내는 강남에서 부유하게 사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 정만철이 결국 두 아내로부터 버림받는 것은 도덕적 처벌이라기보다는 더이상 거짓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나선형의 궤도'로 움직이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 부메랑처럼 발설자에게 돌아온다. 그러나 거짓에 대한 의미 깊은 성찰은 영화에서 제대로 육화되지 못했다. 웃음에 집착한 나머지 유사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후반부 정애네 집에서의 공간 연출도 지루하다. 좁은 공간에 모든 인물들을 끌어들인 연극적인 장면에서는 공간 해부와 인물 배치에 보다 치밀한 분석이 따랐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다만 과장된 표정 연기에 의존하지 않고 모순된 상황 속에서 웃음을 끌어내려는 시도는 평가할 만하다. 23일 개봉,18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