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hsong@krri.re.kr 며칠 전 저녁 식탁에서 공대 졸업반인 아들이 "똑똑한 선배 하나가 외국 유학을 포기하고 한의대를 가기 위해 수능시험을 준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는 내 물음에 아들은 "한의사 선배를 둘 것 같아 기분이 괜찮습니다"라며 엉뚱한 대답을 했다. 우리 어린시절에는 어른들이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대부분 대통령 법관 장군 과학자 등 겉보기에 그럴듯한 직업으로 대답했다. 배우라도 되겠다고 하면 탐탁지 않게 받아들였다. 요즘은 어떤가? 가장 되고 싶은 직업이 '탤런트'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수입도 많으니 그들의 꿈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성공한 스타 뒤에는 단역도 맡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우리나라의 주요 이슈는 중화학공업입국이었다. 나는 그때 과학기술을 배워 나라에 보탬이 되고, 쉽게 취직해 가족 굶기지 않고 살 수 있으리란 마음으로 공대를 선택했다. 많은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공대를 나왔고 순조롭게 취직했다. 그 후 불어닥친 '잘 살아보세' 바람에 휩싸여 일에 온 정력을 쏟았고, 가정보다는 일을 우선시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 육박하자 이제는 허리를 펴고 그간의 고생을 뒤돌아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으려는 순간 외환위기의 찬바람이 몸을 움츠리게 했다. 이제는 구조조정으로 뒷전 신세가 된 것이 공대를 졸업한 내 친구들의 모습이다. 그래도 소주잔을 앞에 두고 지난날의 무용담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 공대를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는 눈치다. 오히려 조국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가득한 것 같다. IMF도 누그러뜨리지 못했던 과학기술인의 자긍심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것이 작금의 이공계 기피현상이다. 선진국을 보면 대체로 국민소득 2만달러를 앞둔 시점에서 일시적으로 이공계 기피현상을 겪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런 현상이 너무 빨리 찾아온 게 문제다. 요즘은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21세기는 무한경쟁 시대다. 과학기술을 토대로 국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사회의 발전에 따라 기술수요는 다양화·고도화될 것이고, 이공계는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인력군이다. 상장사 임원 중 이공계 점유율이 40%를 넘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많은 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하고 있는 이때가 오히려 호기다. 남이 하는 대로 하면 남보다 앞설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