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액을 부도내고 외국으로 도피한 경제사범의 해외생활은 의외로 궁핍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77억원대 당좌수표를 부도내고 미국으로 달아났다 체포돼 10일 국내로 강제송환된 S건설 전 대표 최모(40)씨에 대한 경찰조사로 그의 미국내 도피생활 내면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최씨는 1997년 5월 공무원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돼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기다리던중 처벌을 피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아무런 사전준비도 없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무작정 달아났다. 한국 교민들이 많이 사는 곳에 가면 설마 가족들을 굶기기야 하겠느냐는 생각으로 코리아타운이 형성된 로스앤젤레스(LA)에 거처를 마련했다. 하지만 좀처럼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던 최씨에게 미국의 삶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어려웠다. 궁핍한 생활을 견디다 못한 최씨는 뇌물공여죄 등으로 사법처리를 받는 일이 있더라도 한국에서 사는 게 낫다고 판단해 2001년 2월 지긋지긋했던 미국생활을 마감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한국에 와서 과거의 잘못에 대해 응분의 죄값을 받으면 새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최씨의 생각은 오판이었다. 1994년 발행했던 77억원 상당의 당좌수표의 지급만기일이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자신이 월급사장으로 일했던 회사가 부도내는 바람에 1999년 부정수표단속법 위반 혐의로 수배된 사실을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최씨는 귀국하자마자 이같은 사실을 알고 또 다시 해외로 달아나야겠다고 판단,경찰의 추적과 감시를 피해 다니다 2002년 6월 형의 여권과 주민등록증을 이용해 여권을 위조한 뒤 그 해 9월 캐나다로 출국했다. 최씨는 캐나다에서 20여일 보내다 미국으로 옮겨가 이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취득한 운전면허와 택시운전 허가증을 갖고 택시기사로 일하며 근근이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의 미국내 생활은 한때 국내 건설업체의 CEO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비참했으나 그것조차 오래 유지될 수 없었다. 한국 경찰청이 미국 국토안보부, LA 총영사관과 공조수사에 착수, 미 이민국이지난달 최씨에게 여권과 관련해 문의할 것이 있다며 불러 체포한 뒤 신병을 국내로송환했기 때문이다. 서초경찰서는 부정수표단속법 위반, 횡령 등의 혐의에 대한 수사가 끝나는 대로최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어서 최씨는 교도소에서 "범죄를 저지르고는지구상 어디에도 도피할 곳이 없다"는 교훈을 깨달으면서 죄과를 톡톡히 치러야할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임주영기자 z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