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스로 침체의 터널을 벗어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한국 경제가 고유가-고물가-고원화 가치로 이어지는 '신(新) 3고(高)'의 삼각 파도에 휩싸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달러화 약세의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1천140원대로 떨어지며 유일한 활로인 수출전선에도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부터 꾸준히 오르던 원유 가격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하루 100만 배럴 감산 결정으로 고유가의 장기화가 불가피해졌다. 이에 따라 소비자 물가가 흔들리면서 서민 경제를 압박하고 있고 '침체 속의 물가 상승'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물가가 뛰면 소비가 위축되고 이는 내수 침체의 장기화를 부추겨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게 마련이고 경기 회복이 늦어지면 신용불량자나 가계 부채 문제, 청년 실업 문제의 연착륙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고물가에 서민 경제 휘청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 경제는 유가 급등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어려운 상황이다. 통계청이 1일 발표한 3월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월대비 1.0%, 작년 동월대비 3.1%를 각각 기록했고 1-3월의 작년 동기대비 상승률은 3.3%로 이미 정부와 한국은행이 설정한 물가 억제 목표인 3% 안팎의 상단에 도달했다. 3월 물가 상승 원인의 50%는 학교 납입금을 선두로 학원비와 고속도로 통행료를 비롯한 개인 및 공공 서비스 분야가 주도했고 32%는 육류, 채소 등 농축수산물 상승 탓이어서 서민 생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교육비와 주요 식료품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된 항목만으로 엮여진 생활물가지수는 전월대비 1.6%로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크게 웃돌았다. 3월 물가지표에서는 석유류 가격 상승률이 전월 대비 0.6%에 그쳐 아직 유가 충격이 가시화하지 않았음을 보여 주고 있다. 통상 유가 상승이 생산자물가를 거쳐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걸리는 3-4개월의 시차를 감안하면 2.4분기 이후 물가 전망이 어두워지는 것은 물론이다. 정부는 유가가 배럴당 연간 1달러 상승할 경우 0.15%의 소비자물가 상승을 유발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정부는 할당관세나 석유 수입부과금 조정, 유류 관련 내국세의 탄력세율 적용 등의 수단은 물론 5천600억원 규모의 유가 완충자금 등을 확보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그러나 민간 연구기관들은 유가 급등시 인위적 가격 조정보다 시장 수급에 맡겨야한다는 견해가 많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유가 상승이 소비자 부담으로 고스란히 전가되고 이는 임금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경제 전반에 만만치않은 짐이 될 전망이다. ◆고유가.원자재난..기업 채산성 악화 올 1.4분기의 평균 원유 도입 단가는 배럴당 29.4달러(두바이유 기준)로 지난해의 평균 단가 26.8달러를 훌쩍 넘어 벌써 30달러선을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 1.4분기 도입 단가가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연간 0.4%의 물가 상승 요인이 된다. 특히 우리 나라는 원유 수입 구조상 OPEC 회원국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동 지역 의존도가 80%에 달하기 때문에 직접적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유가나 원자재 가격 상승은 기업체의 채산성에 큰 악재다. 제품 값을 올려야 하지만 내수가 침체된 상황이어서 유가 상승분의 상당 부분을 떠안아야 한다. 향후 유가 전망은 엇갈리고 있지만 당초 기대했던 것처럼 급격하게 떨어지기보다는 현재의 유가 수준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가 많다. 다행스럽게도 OPEC의 감산 소식이 전해진 31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의 유가는 미국의 원유 재고가 늘어났다는 소식에 5월 인도분이 배럴당 1.4%가 떨어졌고 런던 국제석유거래소에서도 2.9%의 낙폭을 보였다. OPEC의 감산 소식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대의 원유 수출국인 러시아가 즉각 '증산' 방침을 밝혀 감산의 실효성이 의심되는 데다 원유 성수기인 동절기가 지나면서 2.4분기부터는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급속히 회복되고 있고 원자재 '블랙홀'인 중국의 고성장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국제 테러의 가능성이 팽배한 현실을 감안하면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2.4분기부터 유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해외 여건을 고려할 때 예상보다는 높은 수준이 계속될 것으로 보여 경제에 꾸준히 부담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원화 강세도 경제에 타격 설비투자와 소비 등 내수가 극도로 부진한 상황에서 수출은 한국 경제의 유일한 성장 `엔진'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원/달러 환율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어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환율 하락은 수입업체에는 유리하지만 수출업체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환율은 국회가 대통령 탄핵을 결의한 지난달 12일 1천180.80원까지 솟은 이후 계속 하락세를 유지하면서 급기야 1천140원대까지 떨어졌다. 정부는 국내 우량 기업이 견딜 수 있는 적정환율 수준을 1천170선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환율은 기업들이 '출혈'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구두 내지는 직접 개입을 통해 환율 방어에 나서고 있으나 수급상 하락 추세를 돌이키기는 어려우며 1천100원대 초반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하다. 게다가 일본 경제의 회복으로 엔화 강세가 지속되고 있는 데다 테러 위협 등으로 인해 미국 달러화 약세가 가속화되고 있어 엔/달러 환율이 추가로 내릴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곧바로 원/달러 환율의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입물가가 급등하는 상황에서 환율 하락에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권순우 삼성경제소 수석연구원은 "그동안 원화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었기 때문에 환율 하락은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더욱이 엔화 환율도 함께 떨어지고 있으므로 수출에 큰 차질이 빚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유가와 고물가가 현실화하고 환율까지 급락하면서 5%대 성장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출 활황에 힙입어 정부나 한은은 5%대 성장이 무난하다고 아직은 낙관하고 있지만 고유가가 장기화하고 환율 하락이 지속될 경우 경제 성장 속도는 더욱 둔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김종현.윤근영.김종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