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가 종합금융그룹의 꿈에 부풀어 있다. 1일 금융감독원과 금융계에 따르면 일부 은행을 중심으로 금융지주회사를 만들거나 모자(母子) 기업집단 형태의 금융업종 `그룹화'를 여러 곳에서 타진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금융업의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대형화 추세에 발맞추는 동시에 고객들의 다양해진 금융 서비스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금융종합그룹 체제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효율성 측면에서는 아직까지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고 감독 당국에서도 금융그룹화에 대해 면밀한 관찰과 함께 감독방향을 점검하고 있다. ◆어떤 금융사가 그룹화에 나서나 최근 금융종합그룹화와 관련 주목을 끌고 있는 곳은 국민은행[060000]과 하나은행[002860]이다. 하나은행은 서울은행 합병에 이어 한국투자증권과 대한투자증권 인수에 공식적으로 뛰어드는 등 금융지주사를 향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으며 지주회사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국민은행 주변에서도 변화의 기미가 감지되고 있다. 김승유 하나은행장은 지난 26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종합 금융 서비스 체계를 구축하고 증권 및 보험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금융지주회사의 설립이나 인수.합병(M&A), 전략적 제휴 등의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국민은행은 지난달 초 최범수 전 부행장을 다시 불러들여 `투자신탁증권 인수사무국'을 맡기고 한투나 대투를 인수하기 위한 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한일생명보험 인수도 추진 중이다. 국민은행이 한투나 대투 중 한 곳을 인수할 경우 은행과 카드, 보험, 투신 등에 이어 증권사까지 아우르는 지주회사나 현재의 모자회사를 확대 발전시키는 형태 중 하나를 선택해 금융종합그룹으로 발돋움할 전망이다. 산업은행과 삼성그룹의 행보도 눈길을 끌고 있다. 산업은행은 최근 대우증권 매각 계획을 철회하고 지분 81.85%를 가진 서울투신운용을 자회사로 편입할 계획이며 직접 금융과 간접 금융을 포괄하는 종합 금융 서비스 체제를 갖추겠다고 밝혀 지주회사 전환을 시도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울러 삼성그룹도 최근 삼성생명의 삼성카드에 대한 출자에 대한 금융감독위원회의 예외 인정을 계기로 삼성생명을 축으로 하는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계에서는 삼성그룹이 삼성전자[005930]를 축으로 하는 일반 지주회사와 삼성생명을 비롯한 금융 관계사들을 묶는 금융지주회사로 재편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그룹화를 모색하는 이유는 최근 금융기관들이 저마다 금융종합그룹화를 검토하고 나서고 배경에는 금융업의 환경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은행과 증권사 등에서 보험상품을 파는 방카슈랑스가 도입됐으며 올해부터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이 시행돼 종합 금융 서비스에 대한 고객들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또 지주회사는 여러 자회사의 고객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한 곳에서 부실이 발생할 경우 다른 자회사로 부실이 옮아가지 않도록 `방화벽(Fire Wall)'을 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차원의 장점이 있다. 푸르덴셜금융의 현투증권 인수로 불붙기 시작한 외국계와 국내사간 자산운용시장에서의 경쟁 격화와 씨티그룹의 한미은행 인수로 예상되는 국내 소매금융시장의 판도 변화 등도 금융계의 발빠른 대응을 부추기고 있다. 아울러 우리금융지주(2001년3월), 신한금융지주(2001년8월), 동원금융지주(2003년5월) 등의 잇단 금융지주회사 설립과 적극적인 몸집 불리기 행보도 `선(先)경험'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금융연구원 이재연 은행팀장은 "은행들이 단순한 예대 업무에서 벗어나 다양한 크로스 셀링(교차판매)을 확대해야 하고 고객들도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원스톱 체제를 원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변화된 영업 환경과 고객들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금융그룹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주회사 등 금융그룹화에 문제는 없나 이곳 저곳에서 금융지주회사 설림 등을 통한 금융그룹화가 검토되고 있지만 실제로 추진되는 과정에서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전망이다. 현행 규정상 지주회사는 상장된 자회사의 경우 30% 이상, 비상장 자회사는 5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 드는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적으로 지주회사 형태로 전환한다 해도 과연 지주회사의 장점을 제대로 살려갈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우리금융이 카드 부문을 따로 떼어내 우리카드라는 자회사를 설립했다가 카드업계의 전반적인 부실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다시 은행으로 합병시켜 부실을 흡수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자회사간 부실 전이에 대한 차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주회사를 통한 그룹화가 자칫하면 임기가 만료된 최고경영자나 임원들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으로 지적되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 이동걸 부위원장은 "금융종합그룹화는 금융사의 대형화라는 차원에서 금융지주회사 형태나 모자 기업 형태로 금융회사 사정에 맞춰 추진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그러나 일부 지주회사의 회장처럼 경영진의 뒷자리 보장용이 돼서는 곤란하다"고 경고했다. 이 부위원장은 "은행장들이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해 회장으로 있으면서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할 수 있다"고 말하고 "감독 당국이 지주회사 전환을 법적으로 막을 수는 없지만 시장에서도 이런 점들을 충분히 우려하고 평가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한승호기자 h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