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말이었다. 중국경제 고속성장의 상징이던 주룽지 중국총리가 측근에게 특별명령을 내렸다. 당시 홍콩 증권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이던 로라 차(중국명 史美倫)라는 여성을 중앙정부 차관급인 중국 증권감독위원회 부위원장에 초빙하라는 것이었다. 우리 풍토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파격 인사였다. 특히 로라 차는 그 당시 미국 국적자였다. 요즘 잘 나가는 중국도 문화 대혁명의 잃어버린 10년으로 인해 적어도 20~30년은 공을 들여야 배출될 CEO 인재 풀의 전멸로 고심하는 것을 단적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CEO들이 무차별로 부정의 화신인양 도마위에 오른 것 같아 안타깝다. 연일 TV를 통해서 CEO들이 포토라인에 세워지고, 각종 부정부패의 온실,공익의식이 결여된 매관주의자 등 부정적인 낙인이 직·간접적으로 씌워지고 있다. 급기야는 자살이라는 불미스런 사태로까지 이어져 버렸다. 물론 CEO가 문제가 있었던 때도,점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발전 과정에서 한 번은 거쳐야 할 성장통으로 이해해 주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 자본주의 선진국이 되려면 철저하게 CEO가 미덕이 되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우선, 우리는 세계화, 네트워킹의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면서 낡은 인식을 뛰어 넘을 필요가 있다. 사농공상의 인습을 극복하는 것은 물론이고 냉전시대의 양적·전시적 관념을 털어버리고 질적·감성적인 뭔가를 해내야 한다. 이를 위해 보다 융통성을 지닌 세계적 안목이 요청되고 있다. 세계경쟁에 보다 일찍, 많이, 노출된 CEO계층이 그래도 경쟁력이 낫다. 그러한 만큼 새로운 창조의 핵에 있게 될 CEO를 하나라도 더 키워야 마땅하다. 소위 신성장동력도 CEO의 독창력을 사야 새롭게 창조가 가능할 것이다. 한 사회의 발전은 표면적으로는 정치로서 대표되지만, 그 이면에는 훌륭한 CEO가 버텨주는 것이다. 비록 CEO가 '특정기업'이라는 틀을 통해서 길러지고 있지만 크게 보아서는 국가의 소중한 자산인 것이다. 둘째,지금은 그 어느때보다 민간이 주축이 돼야 한다. 최근 몇 년간은 정부가 경기를 살리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 왔다. 그런데도 식자들은 만나기만 하면 아직도 나라 걱정이다. 신용불량자가 4백만명을 웃돌고 있고, 가계부채도 4백조원을 넘어섰다. 더 기막힌 문제는 IMF 이후 정부가 온갖 힘을 다해도 투자가 전혀 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상당부분 줄어들었다는 데 있다. 투자가 줄어드니 고용이 줄고, 그러니 가계부채, 신용불량자가 줄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여러 가지 사회정황이 CEO를 극도로 움츠러 들게 했기 때문이다. 이제 CEO들이 다시 신바람나게 뭔가 일을 저지를 수 있도록 기를 살려 주어야 한다. 셋째, 지금 세계는 온통 인재확보전쟁을 치르고 있다. 국력도 사람이 얼마나 모이느냐와 직결되고 있다. 미국은 세계국가로서 전세계 인재들을 거의 휩쓸고 있을 정도이다. 단순히 유학시장을 장악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적 인재들이 제발로 미국으로 쏠리고 있다. 영국은 이에 자극받아 중국의 우수한 인재들을 중학교만 졸업하면 아예 고등학교 과정으로 장학금을 주면서 채가고 있다. 여기에 비해 우리는 어떤가? 미래인재에 투자를 하지는 못할망정 인재풀의 한 축으로서 '있는 CEO'도 제대로 대우해 주는가. 그들이 대우받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이는 당장 한명의 CEO 배출에 투입된 막대한 돈과 시간과 경험을 따져 보아도 그렇다. 우리는 CEO를 비경제적인 요인으로 너무 쉽게 소모품으로 전락시켜 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소득 2만달러 시대를 개척하지 못한다면 지난 30년이 5천년 우리 역사에서 최고 황금기였다는 후대의 준엄한 역사적 평가를 받을지도 모른다. 이런 차원에서 도전적이고 창조적이고 합리적인 CEO의 기를 다시 살려야 한다. 70년대 많은 젊은이들이 지녔던 CEO 스타 꿈의 불씨를 다시 살릴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기대해 본다. yrcheong@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