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현대미술의 거장 고암(顧庵) 이응노(李應魯.1904-1989) 화백의 고향을 놓고 충남 예산군과 홍성군 문화계 사이에 논란이 일고 있다. 예산문화원은 11일 "그동안 고암의 출생지가 홍성군 홍북면 중계리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예산군 덕산면사무소에 보관된 고암의 제적부를 확인한 결과, '덕산면 낙상리 24'로 밝혀졌다"며 고암의 고향이 예산임을 강조했다. 반면 홍성향토문화연구소를 비롯한 홍성지역 문화계는 여전히 고암의 고향이 '홍성'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처럼 고암의 고향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것은 고암의 출생지가 자료마다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1987년 발간된 『예산군지』에는 "고암 이응노는 덕산에서 출생했다"고 적혀 있으나 2001년 발간된 『예산군지』에는 "고암 이응노는 이근상의 넷째 아들로 1904년예산군 덕산면 접경지인 홍성군 홍북면 중계리에서 태어났다"고 기록돼 있다. 또 1997년 예산문화원이 발간한 『예산의 인물』에는 '이응노 화백은 홍성군 홍북면 중계리 출생'이라고 기록돼있는 반면 1989년 프랑스에서 열린 고암 이응노 화백의 전시회 도록에는 '1904년 예산 출생'으로 적혀 있다. 이와 관련, 예산문화원 관계자는 "책을 발간한 당시 고암에 대한 자료가 없어 제보자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아 만들다 보니 오류를 범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홍성군과 홍성지역 문화계가 고암의 고향이 홍성임을 내세워 '고암 청소년 미술실기대회'를 여는 등 해마다 고암 기념사업을 펼치고 있고 최근에는 고암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전시와 '고암 미술관' 유치전을 벌이기는 등 고암을 지역 홍보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도 논란을 확산시킨 요인으로 꼽힌다. 예산문화원 관계자는 "고암의 부친이 중계리에 살다 이웃마을인 덕산면 낙상리로 이사를 왔고 이후 고암과 가족들이 두 마을을 수시로 오가며 생활했기 때문에 고암의 고향이 중계리로 잘못 알려진 것 같다"며 "홍성에서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고암의 고향이 홍성'이라며 기념사업을 벌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홍성향토문화연구회 관계자는 "상당수 책자에 고암의 고향이 '홍북면 중계리'라고 적혀 있고 중계리 주민들과 고암의 친인척도 그렇게 알고 있다"며 종전 입장을 거듭 밝혔다. 한편 고암 이응노 화백은 한국적 고유의 필묵을 바탕으로 시대정신에 투철한 작품활동을 펼쳐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 고국으로 강제 소환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예산.홍성=연합뉴스) 이은파 기자 silv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