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이공계 위기라며 대책이 시급하다고 하자 정작 신나는 사람들은 따로 있는 것 같다. 묵묵히 일하는 과학자 공학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데 일부 '정치과학자' '정치공학자'들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전면에 나서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 시대는 과학자 공학자들의 순수성에만 가치를 둘 수는 없다. 그 동안 과학자 공학자들이 기여도에 비해 정치적으로 너무 작게 대변되는 문제(under-representation)가 있다면 그 또한 타파해야 할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정치과학자 정치공학자들은 많아지고 본업에 충실한 과학자 공학자들이 줄어든다면 이공계 위기는 더욱 심화될는지 모른다. 누구는 한국 정치를 경기를 타지 않는 벤처산업이라고 했다. 여전히 정치 지망생들은 넘쳐나고 있고,몇 번의 실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높은 위험을 감수하며 도전하는 것을 보면 그만한 보상이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 보상이 도대체 무엇일까. 끊임없는 부정부패의 진원지가 정치 쪽이고 보면 '정치가'가 아니라 정치산업에서 한몫 단단히 보려는 '기업정치가'들이 계속해서 양산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업정치가가 넘치는 사회에서는 '기업가' 역시 '정치기업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기업가들은 정치 선진국의 기업가들과 그 처지가 같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기업가 정신이 무엇인가. 일찍이 나이트(F H Knight)는 이윤이란 위험을 무릅쓴 용기에 대한 보수(위험부담설)라고 했다. 기업가 정신은 바로 위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가들이 감수해야 할 위험은 선진국에서 말하는 통상적인 위험,예컨대 기술적 위험,상업적 위험 등을 훨씬 넘어서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기업 정서라는 사회적 장벽에다 정치적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니 말이다. 하기 싫어도 '정치기업가'를 강요받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보상이 엄청나게 많은가. 그렇게 말하기도 어렵다. 우리나라가 어디 높은 보상을 그냥 두고 보는 사회인가. 정치권을 포함해서 손을 벌리는 화투판의 '개평꾼' 같은 이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뿐 아니다. 기업이 존재하는 본질적 이유는 도외시한 채 사회적 책임이니 윤리니 하며 가해지는 압력 또한 약하지 않다. 이리 떼이고 저리 떼이고,게다가 언제 검찰에 불려갈지 모른다는 심리적 압박감까지 계산하면 당사자에게 돌아오는 실질적인 보상이 많을 것 같지도 않다. 선진국 기업가보다 감수해야 할 위험의 정도는 더 크고 보상은 더 낮다면,기업가 정신을 가진 기업가의 공급이 그들보다 더 적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적정 수준에도 훨씬 못미칠 것은 너무도 뻔하다. 일본계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 미국 UCLA대 교수(정책학부)가 한국에 대해 또 한 마디 충고했다. 솔직히 듣는 기분은 썩 좋지 않다. 아픈 곳만 가려 콕콕 찌르는 재주로 치면 그런 재주도 없을 것이다. "지금 한국의 실력으로는 10년 안에 2만달러 시대를 맞기 힘들 것이다. 정치권이 부패하고 관료의 권한,특히 인·허가권이 너무 크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정당들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고 대통령과 경제부총리는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지만 거창하게 떠들 것도 없다. 정치가 바뀌고 규제가 없어져 기업가가 그냥 기업가일 수만 있어도 좋겠다. 그런 환경만 돼도 기업가 정신은 살아날 것이고 경제는 지금보다 크게 달라질 것이다. 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