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 날 없는 정치권이지만 이번에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 논란으로 시끄럽다. 대통령이 선거 운동에 개입해 중립을 훼손했다는 것이 탄핵을 발의한 민주당의 주장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선거를 앞두고 3등으로 떨어진 당의 지지율을 높이고 당 내부의 분열된 모습도 덮을 수 있을 뿐 아니라,'일이 잘 되면' 노무현 대통령을 조기 퇴진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탄핵 추진이 정치적으로 커다란 득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과연 그 정도의 잘못으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사유가 성립될 수 있는지 수긍하기 어렵다. 노 대통령이 주장하듯 정치인인 대통령에게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무리한 일일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이 현재 당적을 갖고 있지 않지만 특정 정당의 후보로 당선되었고 대통령의 직무라는 것이 가장 정치적인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대통령제를 취하는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도 대통령은 비교적 자유롭게 선거 운동에 참여한다. 다만 법이나 원칙의 문제를 떠나서,관권선거라는 과거의 어두운 기억으로부터 벗어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우리로서는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이 특정 정당을 위한 선거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아직까지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같다. 선거를 앞두고 노 대통령이 좀 더 신중하게 행동했어야 했다는 비판이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민주당의 탄핵 소추를 바라보는 국민 여론이 이러하고 민주당이나 한나라당 등 정치권 내부의 속사정도 복잡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야당이 추진하는 탄핵이 실제로 성사될 가능성은 그리 높아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번 탄핵 건은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내부의 분열을 덮고 대신 노 대통령의 잘못을 부각시키기 위한 정치공세로 끝날 공산이 커 보인다. 그러나 싫든 좋든 적법한 절차를 거쳐 선출된 대통령을 임기 중간에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끌어내리려는 시도는 국가 전체로 볼 때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노 대통령이 했던 재신임 발언이 그랬던 것처럼,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1년 반 정도 지났지만 여전히 대통령 직을 둘러싸고 공방이 오고가는 것 자체가 짜증스럽고 불쾌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탄핵을 둘러싼 무책임하고 소모적인 공방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문제는 그리 쉽게 탄핵 정국이 가라앉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탄핵 소추안을 발의했고 노 대통령은 전혀 양보할 것이 없다는 듯한 인상이다. 그러나 탄핵 추진은 민주당이 주도하고 있어도 이 문제를 푸는 열쇠는 대통령의 정치력에 달려 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정치적 격돌이 과거에 비해 크게 가열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와 같은 정치적 사안이 터져 나올 때마다 노 대통령이 야당과의 갈등을 정치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마치 선과 악의 싸움처럼 정면대결을 선택해 온 탓인 듯하다. 이번에도 탄핵 정국이 대통령과 야당의 정면대결로 치닫게 된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나라살림 때문에 힘들어하는 국민들은 정치적 불안까지 겹쳐 더욱 커다란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자신에 대한 탄핵 추진을 유쾌하게 바라볼 대통령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대통령의 지도력은 갈등을 해소하는 능력이다. 정치적 갈등이 생겨날 때 이를 원만하게 평화적으로 해결해내는 것이 정치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모든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탄핵 정국을 해결하기 위해 노 대통령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야당 역시 무책임한 총선용 정치공세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면대결 대신 원만한 문제 해결을 강구해야 한다. 지난 폭설로 삶의 터전이던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 내린 참담한 현장을 보면서 앞날의 막막한 생계를 걱정해야하는 국민들은 과연 탄핵 소추 소식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우리 정치가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kangwt@ss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