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영화관 사업은 부동산업에 가까웠다. 극장주들은 본업인 영화 상영보다 건물가격 상승으로 인한 자산가치 증가에 신경을 더 썼다. 관람객 걱정은 별로 하지 않았다. '목 좋은' 곳에 극장을 지어놓으면 관람석 채우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관람객이 적으면 영화를 바꿔 올리면 그만이었다. 서비스가 수준 이하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영화관 의자는 '고문 의자'라고 불릴 정도로 작고 불편했다. 내부 청결상태나 보안도 형편 없었다. 이 시절 극장은 그래서 어둡고 더럽고 위험하다는 뜻으로 '3D(dark, dirty, dangerous)' 건물로 불렸다. 소비자들이 외면하면서 한국 영화산업도 침체를 면치 못했다. 50~60년대만 하더라도 연 7천만명에 달했던 관람객수가 계속 줄어 90년대 중반에는 5천만명에 불과했다. 한국영화의 미래는 없어 보였다. 영화관이 환골탈태하기 시작한 사건이 벌어진 것은 지난 98년 4월. 11개의 스크린을 갖춘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가 서울 강변에 첫 선을 보이면서 영화관 개념이 1백80도로 바뀌었다. 의자가 편안해지고 좌석 사이 공간도 넓어져 관람객들은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 있게 됐다. 스크린수도 크게 늘어나 '골라 보는' 즐거움도 생겼다. CGV는 관람객들이 티켓을 구입할 때 줄서서 기다리는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은행처럼 순번 발권기도 설치했다. 특히 다양한 놀이시설, 대형 쇼핑몰, 식당, 커피숍 등 부대시설을 갖춰 영화관 자체를 하나의 놀이공간으로 바꿨다. 새로운 '놀이공간'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도심에서 제법 떨어져있는데도 불구하고 강변CGV에는 첫해에만 3백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현재 CGV 체인수는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17개(1백36개 스크린)로 늘었다. 매출도 급증했다. 98년 1백45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1천8백22억원을 기록했다. 5년만에 10배 이상 뛴 것이다. 연간 관람객 수도 2천5백만명으로 8배 이상 늘었다. CJ CGV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20%가 넘는다. CGV가 새롭게 선보인 서비스들을 보면 기존의 극장들과는 전혀 다른 가치를 소비자들에게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CGV는 영화관의 개념을 바꿨다. 단순한 영화관람 장소가 아닌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오락시설, 전용 라운지 등 보완적인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극장을 '환상을 즐기는 놀이터'로 변화시킨 것이다. 이 회사의 슬로건 그대로 '영화 그 이상의 감동'을 주기 위해서였다. CGV는 한걸음 더 나아가 각 영화관 특성을 살린 맞춤형 보완서비스도 제공했다. 'CGV골드클래스'는 항공기 일등석 수준의 편안한 좌석과 전용라운지, 와인바를 갖췄다. 주거지역에 위치한 'CGV야탑8'에선 부부 관객을 위해 유아놀이방을 설치했다. 여성 쇼핑객이 많은 'CGV명동5'는 메이크업 공간과 무료 쇼핑백 보관함을 제공하고 있다. CGV는 새로운 서비스를 위한 시설을 갖추는데도 상당한 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투자 이상으로 매출 증대 효과를 거뒀다. 순번 발권기를 보자.이전에는 관람객들이 표를 살 때까지 창구앞에서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순번 발권기가 설치된 이후 관람객들은 번호표를 뽑아놓고 기다리는 시간동안 주변에 있는 매점이나 게임장을 이용했다. 매점, 게임장 매출이 급증한 것은 물론이다. 새로운 가치를 제공한 만큼 그동안 극장을 찾지 않던 사람들까지 CGV로 몰려왔다. CGV골드클래스의 경우 가격이 일반 극장의 2배가 넘는 2만∼3만원임에도 불구하고 VIP 고객을 접대하려는 기업들, 결혼기념일 등을 위해 특별이벤트를 준비하는 일반인들로 붐비고 있다. 유아놀이방 서비스를 갖춘 CGV야탑8은 결혼 이후 극장에 발길을 끊은 30∼40대 관람객들을 새롭게 유인했다. CGV명동5는 쇼핑을 목적으로 명동을 찾는 여성고객들의 발걸음을 극장으로까지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서비스 수준을 높인 만큼 당연히 돈이 많이 들게 돼있다. 임종길 CJ CGV 경영지원팀장은 "멀티플렉스의 특성을 살린 갖가지 아이디어로 비용절감에 만전을 기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영화관을 도심외곽 건물에 입주시켜 임대비용을 낮췄다. 또 여러 개의 스크린을 모두 같은 층에 위치시킨 것도 비용 절감을 위한 고려였다. 이로인해 영사기사 수를 대폭 줄일 수 있었고 화장실 등 필수 부대시설 설치에 드는 비용도 30% 정도 절감시킬 수 있었다. CJ CGV는 다양한 보완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90년대 중반까지 한국에는 없던 종합엔터테인먼트 공간이라는 새개념으로 영화관 비즈니스를 새로 창출했다. CGV는 사업 시작이후 지금까지 연 평균 20%가 넘는 수익률(경상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기껏해야 8% 수익률이 최고였던 이전 극장들은 생각지도 못한 수치다. 송대섭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