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폭발음이 4차례 정도 들려오더니갑자기 얼굴에 불길이 확 닿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도 죽지 않았더군요." 시아 무슬림의 성지인 이라크 카르발라에서 2일 연쇄폭탄 공격으로 100명 이상이 숨지는 대형 참사현장을 지켜본 오정옥(吳正玉.41)씨는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몸서리를 쳤다. 프리랜서 영상촬영 감독으로 활동하는 오씨는 이날 오전 10시께 카르발라의 후세인사원 주변에서 시아 무슬림들의 아슈라(애도의 날) 행사를 취재하던 중이었다. 오씨는 폭탄이 터진 곳에서 불과 7∼8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주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폭발 충격으로 몸이 부서지거나 살점이 뜯겨져 나간참혹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지만 믿기 어려울 만큼 오씨는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다. 지난 1월 말 이라크 땅에 첫발을 들여 놓을때 한번쯤은 이런 위험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했다는 오씨는 다른 사람들이 방패역할을 해줘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것같다고 말했다. "또 터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참사현장을 생생히 기록할 수 있는절호의 찬스라는 생각도 함께 뇌리를 스쳤습니다. 정신없이 카메라를 돌렸죠." 오씨는 덕분에 폭탄이 터지는 생생한 장면은 물론이고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참혹한 모습으로 죽어가는 사람 등 아비규환의 현장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자살폭탄 공격이란 느낌을 받았다는 오씨는 "죽어가는 사람에겐 미안했지만 카메라를 들이댈 수 밖에 없었다"며 16년간 관록을 쌓은 촬영인으로서의 복잡한 심경을 피력했다. "종교적인 행위가 사람 살아가는 데 있어서 행복을 주는 것이긴 하지만 종교가또다른 형태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폭탄이 터진 직후 주인을 잃은 채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신발이우리의 인생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는 오씨는 프리랜서 PD인 강경란씨와 함께 사담 후세인 정권붕괴 이후의 이라크 실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중이다. 지난 98년 산악인 박영석씨의 히말라야 등정 코스를 동행취재했다는 오씨는 영화 `파업전야', `코르셋',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선택'의 촬영을 맡았다. (사진있음) (바그다드=연합뉴스) 박세진특파원 parks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