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ots@maxmovie.com 스탈린이 사망한 지 3년 뒤인 1956년 2월. 흐루시초프가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 연단에 올라 스탈린을 신랄히 비판하고 있었다. 그 때 대의원 석에서 "흐루시초프 당신은 그 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라는 규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루시초프는 목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말했다. "미안하지만 일어서서 떳떳이 자신의 입장을 밝혀주기 바랍니다."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고,일어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흐루시초프가 말했다. "나도 당신과 마찬가지였소." 독재자들은 대중의 집단행동을 두려워한다. 누군가에 의해 집단행동의 실마리가 제공되는 것부터 봉쇄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를 위해 동원되는 대중관리 방식이 '인질 딜레마'다. 바로 "먼저 나서면 죽는다"는 협박만으로 수백명의 탑승객을 제압하는 비행기 납치범식 수법이다. 그런데 스탈린 시대도 아닌 2004년 대한민국에서 "할 말이 있으면 일어서서 해보라"고 국민을 위협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회 정개특위를 통과한 인터넷 실명제는 인터넷 언론사 게시판에서 선거관련 의견은 반드시 실명이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무슨 말을 해도 탈없는 민주사회인데 왜 떳떳이 말 못하느냐"고 강변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논리는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미국에서도 통하기 힘들다. 오랜 독재정권을 겪은 우리 국민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표현의 자유는 익명성을 포함하는 게 옳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내부고발자를 적극 보호하기 위함이다. 물론 온라인에서의 허위사실 유포와 악의적 글은 증가 추세다. 온라인의 범법행위는 흔적 추적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실명제를 강요하는 것은 행정 편의를 위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게시판 실명제 도입 여부는 해당 인터넷 사이트가 알아서 할 일이다. 게시판에서 명예훼손 등의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은 인터넷 사이트의 권리이자 의무다. 실로 민주국가의 정치인이라면 익명이든 실명이든 옳은 소리에 귀만 기울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