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송금' 사건에 이어 현대비자금 150억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1심에서 징역 12년이 선고된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이 23일 오후 서울고법에서 열렸다. 녹내장 수술로 두 눈에 거즈를 대고 링거를 꽂은 채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들어선 박 전 실장은 반백의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고 환자복 위에 두터운 겨울 점퍼를 휘감고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이었다. 1심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생각하며 의연하게 재판을 받아온 박 전 실장은 뇌물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고 징역 12년에 추징금 147억5천여만원의 중형이 선고되자 기력을 잃고 급속히 건강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이주흥 부장판사)의 인정신문에 박 전실장은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등 힘겨워했다. 재판부가 마스크를 착용한 이유를 묻자 변호인이 "감기 기운과 수술후 안정을 위해서"라고 답했으며 재판부가 박 전 실장에게 "본인이 대답할 수 있으면 대답하라"고 주문하자 힘겹고 느린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이날 박 전 실장의 진술은 "네"라는 대답과 생년월일, 주민등록번호가 전부였으며 직업과 주소는 직접 말하지 못하고 변호인이 "1심과 다르지 않다"고 도와줘야 했다. 재판부는 "변호인이 최근 피고인의 협심증과 오른쪽 눈 녹내장 수술 등 건강악화와 변론준비 미흡 등을 이유로 재판 기일변경 신청서를 제출했다"며 "재판 참고를 위해 안압변화와 치료내역 등 구체적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녹내장이나 협심증은 완치되기는 어려운 만성적인 질환이고 재판과정에서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치료나 수술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며 "피고인의 변론 기회를 충분히 보장하고 다른 사건을 미루더라도 이 사건을 집중 심리할 계획인 만큼 피고인도 몸 관리를 잘해 다음 기일부터는 재판에 적극적으로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변호인측은 항소이유 및 추후 재판진행과 관련해 ▲김영완, 정몽헌, 이익치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는 이유 ▲이익치씨가 박 전 실장을 만났다고 주장하는 시점으로로 보이는 2000년 4월14일의 알리바이 ▲대북송금을 통치행위로 봐야 하는 이유 등을 입증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검찰에서는 공판검사가 참석했으며 `대북송금' 특검팀에서는 박광빈, 김종훈 특검보가 나와 재판을 지켜봤다. 재판부는 내달 8일 오후 2시 재판을 다시 열기로 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상희 기자 lilygarden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