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22일 강신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과의 조찬 회담에서 '창업형 기업가'에 대한 우대 방침을 강조한 것은 그동안의 기업정책에 일대 방향전환을 시사한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또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관련된 그동안의 정책을 정면 부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어 그 배경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경련 쪽에서 먼저 제의해 이뤄진 이날 회동에서 이 부총리는 작심한듯 현 정부의 기존 기업정책에 대한 궤도수정 필요성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우선 이병철 전 삼성 회장과 정주영 전 현대 회장 등 창업형 기업가의 역할이 지금 시점에서 절실함을 강조했다고 배석했던 김광림 재경부 차관은 전했다. "과거에는 한국에도 (이ㆍ정 전 회장 등) 빌 게이츠와 같은 창업형 기업가들이 있어 투자가 크게 일어났으나 지금은 관리형 기업가들이 득세하면서 투자 활력이 쇠퇴하고 있다"는데 강 회장과 견해를 같이했다는 것.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수익구조 및 주가관리 등 '관리형'에 중점을 둬온 기업정책이 단기 성과중시형 경영을 유도하고 이것이 만성적인 투자 부진으로 이어져 구조적인 경기침체를 가중시키고 있는 것으로 현 경제상황을 정리한 셈이다. 이같은 관측은 순수 신규 창업만이 아닌 기존 기업의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진출도 '창업'으로 규정, 지원 대상으로 삼을 것이라고 밝힌 데서 한층 분명해진다. 기존의 기업정책에 대한 일대 궤도수정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대기업들의 신규 사업 진출을 출자총액제한 등의 족쇄로 묶어온 공정거래위원회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당장 관심사로 떠올랐다. 전임 정부시절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으로 대표적 구조조정론자였던 이 부총리의 '변신' 배경도 관심을 모으는 대목이다. 현실론자이기도 한 그가 실업ㆍ신용불량 대란 등 난마처럼 얽힌 경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기업가정신 고양에서 해법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5년간 2백만개 일자리 창출 등 산적한 경제 현안을 풀기 위해서는 '5% 이상'의 성장이 필요해짐에 따라 구조조정ㆍ비용절감ㆍ이익관리로 요약되는 기존의 기업경영 패러다임에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같은 관측은 이 부총리가 지난 18일 국회 답변에서 "우리나라 기업환경은 여러가지 규제가 많기 때문에 10점 만점에 잘 주면 7점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던 것과도 맞물려 힘을 받고 있다. 지난 20일 정례 언론 브리핑에서는 "기업의 투자 활성화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는지 경제단체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같은 이 부총리의 정책전환 시사에 대해 재계는 즉각 환영하고 나섰다. 전경련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금융ㆍ기업 구조조정을 주도한 이 부총리가 또 다시 구조조정 등 재벌 개혁에 비중을 두지 않을까 하는 재계의 우려가 없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라며 "이 부총리는 기업과 시장을 잘 아는 사람인 만큼 기업 경영여건 개선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회동에서는 골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김 재경부 차관이 자신 몫의 그린피 17만여원을 먼저 계산했다가 폭우로 라운딩이 취소되자 환불받는 등 달라진 접대 문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현승윤ㆍ박수진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