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8년 2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 벙커에서 권총상을 입고 숨진 김훈 중위가 자살인지, 타살인지 결론내기는 어렵지만 군 수사기관의 초동수사 미흡으로 수많은 의혹이 남겨진 만큼 국가는 정신적 위자료를 지급할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서울고법 민사11부(재판장 김대휘 부장판사)는 16일 김 중위 유족들이 `국방부특별합동조사단이 사건의 진실을 은폐, 왜곡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심을 깨고 "피고는 1천20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수사기관이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 진상을 밝힐 의무를 저버렸다면 이는 직무를 위배한 것"이라며 "특히 군대의 경우 병역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장병에 대한 보호의무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사시 외부인의 참여가 허용되지 않으므로 더높은 수준의 진상조사 의무가 부여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군 수사기관은 당시 사건을 조사하면서 현장보존이 미흡했고 알리바이를 형식적으로 조사했으며 사건에 대해 예단을 갖고 접근하는 등 초동수사 과정에서 직무를 다하지 못한 점이 인정된다"며 "다만 국방부 특별합동조사단 등 이후 2차례 수사과정에서의 직무상 위법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당시 사고 지역은 유엔군 사령군 관할지역이어서 현장보존 및 변사자 검시를 미군측에 의존했고 미군의 제지로 5시간 후에야 현장에 진입하는 등 초동수사의 한계도 있었다"며 "그러나 당시 예단을 갖는 바람에 자살.타살 여부가 불분명해지고 이후 재조사에도 불구, 불신이 가중되는 등 수사기관의 직무유기가 인정된다"고 설시했다. 재판부는 "초동수사 미흡으로 수많은 의혹이 생겼고 가족들의 알권리와 인격권, 김훈 중위의 명예 등이 침해돼 정신적 피해를 본 점이 인정되는 만큼 상징적 의미에서 소액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다"고 덧붙였다. 유족들은 지난 99년 `국방부 합조단이 공정성을 잃은 형식적 수사만으로 서둘러 자살 결론을 내렸다'며 국가를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으나 1심에서 패소판결을 받았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jbr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