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거로부터 앞날의 길잡이를 찾는다. 그래서 현명한 이는 "옛 것을 익히면 새 것을 알게 된다(溫故知新)"는 말을 기리지만, 우둔한 사람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게 된다. 1999년 9월에 '한국주택저당채권유동화주식회사(약칭 KoMoCo)'라는 긴 이름의 회사가 생겼다. 그런데 이 기관이 긴 이름값을 못한 모양이다. 마치 코미디 프로에서 "삼천갑자 동박삭이…"가 제구실 못했듯이. 또 하나의 과거 교훈은 선거 직전에 신설하는 제도에 조심하라는 경고이다. 단적인 예로서 지방 중소기업 전담 금융기관으로 신설된 '동'자 돌림 지방은행들, 노동자 은행이라던 평화은행 등의 부실·폐쇄를 보면 알 수 있다. 표심을 노린 정치계산으로 만든 제도는 거의 예외 없이 문제를 일으키고 문을 닫게 되거나 달리 간판을 갈아야 한다. KoMoCo가 4년 반 만에 이제 주택금융공사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동안 일단 발행한 것을 되팔 수 있는 2차 시장이 없어 부진했던 주택저당채권(MBS) 시장이 활성화 되어 서민계층에게 장기·저리 주택구입자금 공급이 수월해 질 모양이다. 아울러, 근래 이상 열기를 띠고 있는 부동산 거품 걷히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한다. 정부 공신력의 밑받침이 있기에 그만큼 MBS거래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 같고 채권시장에 벤치마크 금리수준이 형성돼 금융시장 전반의 사정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가 모아진다. 반면 주택금융공사에 대해 우려도 없지 않다. 과거 경험에 비추어 4월 총선거 직전에 서둘러 설립하는 그 자체를 의심쩍게 볼 수 있다. 학자금 대출업무까지 담당한다는 보도가 더욱 그러한 의심을 부추긴다. 선진국 제도가 다 좋은 건 아니지만, 미국의 경우에도 저당채권 업무를 취급하는 패니매이(Fannie Mae)나 프레디 맥(Freddie Mac) 이외에 학자금 대출을 전담하는 샐리매이(Sallie Mae)가 별도로 있다. 좋은 뜻(善意)으로 잘 포장된 길이 반드시 천국에 이르는 게 아니라 대개는 지옥으로 인도한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선의가 지나칠수록 본의 아닌 목적지로 몰고 갈 공산이 크다. 특히 유한한 자원을 담보로 하는 경제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나라의 향방이 걸려있는 총선을 앞두고 젊은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하면 무슨 말인들 못하겠는가. 그러나 책임 있는 정부라면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 주택금융공사는 MBS관련 업무에 한정된 일만 해야 한다. 학자금 문제는 달리 전담 기관을 설립하든지, 민간 금융회사에 분담시키는 것이 원칙이다. 선진국에서는 공적 주택금융기관(패니매이 포함) 등을 민영화하는 추세인데, 한국은 이제 이런 추세에 거슬러 정부기관을 만들어야하는 고충은 백번 이해하지만 처음부터 공룡으로 기관을 키울 까닭이 없다. 문제는 경영문제에 집중된다. 과연 금융시장을 아는 경영진이 들어서느냐, 아니면 인사적체로 방출되는 공직자들 자리 만들기로 되느냐에 있다. 주택금융공사는 단기(아마도 5년 내) 부실 징후가 나타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조만간 대출상환 리스크 등 각종 리스크가 두드러지게 될 것이고 부실이 누적되면 결국에는 당초의 채무자가 아닌 불특정 다수의 국민들에게 조세 부담으로 귀착될 우려도 없지 않다. 이것이 '정부 공신력'이란 마법의 동전 이면이다. 이와 관련해서 신용평가 업무까지 주택금융공사에 편입시키는 데에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앞서 말한 수익률 곡선(일드 커브) 문제는 정부가 만기가 다양한 국공채들을 발행함으로써 해결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중산층 내지 서민층의 내 집 마련 기회를 확대한다는 근본 취지에 충실한다면 가타부타 토를 달 생각은 없다. 그러나 10년 뒤쯤 MBS부실문제로 금융시장이 파국에 몰리는 일이 없도록 잘 다듬어 출범시켜야 한다는 다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서민층에 금융혜택을 나누어 준다던 신용카드 확대 보급이 신용불량자 양산을 초래하지 않았던가. 선의가 지나칠수록 일단 의심하고 보아야 하는 게 경제문제다. pjkim@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