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수명 연장과 출산율 저하 등에 따라 우리나라는 인구의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국가로 꼽힌다.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전체인구의 7%에서 14%로 증가하는데 우리나라는 23년이 소요될 예정으로 프랑스 스웨덴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에 비해 최고 5배 빠르다고 한다. 급속한 고령화는 노동력 공급을 줄이고 저축률을 떨어뜨려 경제성장을 둔화시키고 노인부양 부담을 크게 늘릴 전망이다. 지금은 생산가능인구 10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으나 2030년께면 생산가능인구 3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할 것으로 보여 노인부양을 둘러싼 세대간 갈등마저 우려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정부에서는 얼마 전 고령사회에 대응한 범정부적인 대책을 마련한 바 있다. 근로자의 정년을 60세로 연장하고 고령자 채용 및 훈련에 관한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고령자의 고용기회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급격한 고령화 문제의 해결책은 노인인구의 경제활동 참여를 촉진시키는데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고령인구 고용 촉진을 위해 정년을 60세로 연장하고 민간기업에 강제하겠다는 정부 방침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 퇴직자 가운데 정년퇴직 사유로 직장을 그만두는 근로자는 0.4%에 불과할 만큼 오늘날 많은 민간기업들에서 정년제도는 유명무실하다. 55세 정년도 못 지키는 기업에 60세 정년을 지키도록 강요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이런 점에서 정부의 정년 연장 방침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지않을 수 없다. 시장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누리는 일부 기업 근로자나 신분이 보장되는 일부층만이 그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해석일까. 기업 구조조정은 곧 인력조정을 의미하고 인력조정은 특히 장기근속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주된 이유는 바로 생산성과 무관하게 근속연수에 따라 자동적으로 증가하는 연공서열형 임금제도 때문이다. 노하우가 축적된 숙련인력을 해고하는 것은 기업 측면에서도 손실이다. 그러나 동일한 업무를 하더라도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2배 이상 차이가 난다면 기업으로서는 다른 선택이 어렵다. 장기근속한 중장년층 근로자들의 고용 안정을 위해서는 연봉제 직무급제 등 능력주의 임금체계 도입을 지원함으로써 임금의 유연성을 높이는 일이 더 시급하다. 임금이 직무의 가치와 생산성에 따라 합리적으로 결정되는 구조라면 기업들은 굳이 장기근속자 위주의 고용조정을 단행할 이유가 없다. 직무급 임금체계인 미국에서는 장기근속자들의 고용이 젊은층보다 더 안정돼 있다. 미국 근로자들의 임금은 얼마나 오래 근무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숙련도가 높은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은 높은 임금을 받는 식이다. 이에 따라 미국기업들은 경영 악화로 고용조정이 필요한 경우 입사시기가 빠를수록 나중에 해고당하고,장래 재고용될 경우에도 입사시기가 빠를수록 우선 재고용된다. 이것이 미국 노사관계에서 특징적인 선임권 제도(seniority system)이다. 우리의 경우에도 직무급 형태의 임금체계를 지닌 일부 업종에서는 경험이 많은 고령 근로자에 대한 문호가 넓은 편이다. 건설업의 경우 목공 미장공 등 직종과 기능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므로 기업들은 숙련도가 높은 고령 기능공을 선호한다. 고령화 급진전과 과도한 노인부양에 따른 재정부담 등을 우려해 정부에서는 고령인구 고용 촉진책을 내놓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정년을 연장하고 민간기업에 강제하는 식의 시장경제원리에 반하는 조치는 수긍하기 어렵다. 현행 연공형 임금체계를 손질하지 않고서는 정년 연장은 공염불에 불과하고 일부 계층만의 제도가 되기 쉽다. 전투적 노동운동 관행과 생산성을 상회하는 높은 임금 인상은 우리 경제 고비용구조의 중요한 원인이 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일방적 비용부담과 산업경쟁력 저하를 불러와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기업의 발목을 잡는 정책이 나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동북아 중심국가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hamk@korcha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