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년 새해 벽두부터 재계는 '역시 성장'이라는 화두를 꺼내들고 '다시 뛰자'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한 해에 대한 실망감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초조감이 재계의 분발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의 경우 저마다 제몫을 찾겠다며 갈등과 반목으로 날밤을 지새버린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다.



참여정부가 기세좋게 내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구호는 허공의 메아리처럼 벌써 추진력을 잃은 듯하다.


때문에 '파이부터 키워 놓고 보자'는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린다.


'성장엔진에 다시 불을 지피자'는 구호도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를 위해 올 한 해도 기댈 곳은 '역시 수출'이라는 지적이다.


요즘처럼 내수 중심의 성장전략이 한계를 보이는 상황에서 수출의 역할은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


실제 '2003년 한국호'는 수출 외바퀴가 고군분투하면서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우리나라의 수출 규모는 1천9백43억3천만달러로 2천억달러에 육박했다.


당초 목표치 1천7백50억달러를 훌쩍 뛰어넘었다.


사상 최대치였던 지난 2000년의 1천7백23억달러보다 2백20억달러나 많았다.


연간 수출증가액 3백18억달러는 94년 2백90억달러 증가 기록을 갈아치웠다.


하루 평균 수출액 6억9천만달러는 지난해 5억8천만달러를 상회했다.


하지만 꼼꼼히 뜯어보면 이같은 숫자의 마술에 마냥 도취돼 있을 수 없다.


장밋빛 전망을 가로막고 나설 걸림돌이 도처에 깔려 있다.


우선 중국 효과(China Effect)가 지나치다.


중국이 지난해 처음 한국의 1위 수출국에 등극하면서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02년 14.6%에서 18.4%로 커졌다.


하지만 올해부터 중국이 비관세 장벽을 통해 수입 규제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은 심화된 중국 의존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대목이다.


더군다나 13억명의 인구 대국 중국이 우리의 경쟁국으로까지 훌쩍 커버린 상황이고 보면 수출선 다변화가 먼 훗날의 과제가 아님이 분명하다.


고질적인 대일 무역적자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수출 증가세에 비례해 일본으로부터의 기계류 부품ㆍ소재 등의 수입이 확대된데 따른 것.


지난해 대일 적자 규모 1백85억9천만달러는 사상 최대치다.


기존 최고치 1백57억달러(96년)보다 약 30억달러나 많다.


수입증가율도 2002년 12.1%에서 지난해 21.4%로 높아졌다.


최근 수출 품목의 편중도는 덜해졌지만 중국(수출)과 일본(수입)에 의존하는 수출·입 지역 편중 문제는 더욱 심화됐다.


여기에 지난해에 이어 올들어서도 무역업계 최대 이슈로 떠오른 FTA(자유무역협정)가 갈길 바쁜 수출업계의 발목을 잡지나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정부 등 관련 연구기관은 2010년이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이 가능하다는 낙관론을 펴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넘는 대부분의 나라가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가는데 평균 9.4년이 걸렸다는 통계적 분석에 근거한다.


이는 매년 실질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5%를 넘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 얘기다.


수출도 연평균 11%대를 꾸준히 유지할 때 가능하다는게 무역협회의 분석이다.


올해 정부가 목표로 삼은 수출 2천1백억달러(잠정)를 이루는게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을 위한 지름길이라는 얘기다.


결론은 자명해진다.


기업에 수출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면 된다.


재계는 무엇보다도 노사관계 안정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오석 무역연구소 소장은 "생산성 향상 범위 내에서 임금 상승폭이 결정되는 풍토가 조성되고, 해고나 소송에서 노측에 지나치게 유리한 일부 법규 및 관행의 개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의 역할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무역협회 김극수 동향분석팀장은 "정부가 노동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 노사간 갈등과 분규의 소지를 최소화하는 정책적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된다"고 지적하고 "FTA 등 국가적 과제에 대해서는 이해 당사자들의 일방적 주장보다는 대국적 견지에서 소신을 갖고 풀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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