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 아들을 잃은 부모가 보험금을 청구하자 간질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숨겼다며 오히려 사기로 몰아 보험계약까지 해지한 보험사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서울지법 남부지원 민사4부(재판장 김상철 부장판사)는 2일 지난 2002년 3월말 대중탕에서 물에 빠진 아들을 패혈증으로 잃은 B(43)씨가 보험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지급 청구소송에서 "간질은 생명을 현저히 단축시키는 질병으로 볼 수 없다"며 모두 1천14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원고일부 승소판결했다. B씨 부부는 지난 97년 9월 아들(당시 10세)을 피보험자로 자녀의 나이가 24세가 될 때까지 보험 기간이 유지되는 납입기간 5년의 건강보험 계약을 보험사와 맺었다. 그러나 아들은 지난 2001년 11월초 아버지와 대중탕에서 목욕을 하던중 물에 빠져 병원으로 옮겼지만 투병 끝에 이듬해 3월말 무산소성 뇌손상에 따른 패혈증으로 숨졌다. B씨 부부는 아들이 숨지기 2개월전 보험사에 상해 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보험사는 "아들이 간질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사전에 고지하지 않아 '사기'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간질은 최초 발작일로부터 2년이내에는 보험계약체결을 거절하도록 생명보험협회가 정한 중대한 질병"이라며 납입 원금만 돌려주고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했다. 이 보험사 약관에는 '암 또는 에이즈의 진단 확정을 받은 뒤 이를 숨기고 가입하는 등의 뚜렷한 사기 의사로 계약이 성립되면 책임 개시일로부터 5년 이내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고 돼 있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원고는 아들이 간질을 앓고 있다는 사실에 관해 소극적으로 고지하지 않은 것으로 명백한 사기라 볼 수 없다"며 "간질은 경우에 따라 보험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질병"이라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B씨 부부는 보험사가 계속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자 지난 2002년 10월 2억2천만원의 보험금 지급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기자 gcm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