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내 우리경제를 괴롭혔던 카드사 부실 문제가 합병 증자 매각 등의 방법으로 해법을 찾아가고 있다. 이런 해법을 찾기까지의 진행과정에서 국내 금융시장의 세 가지 해묵은 쟁점이 다시 부각됐다. 첫째는 관치 금융 시비,둘째는 자본의 국적성 문제,그리고 산업자본의 금융업 소유에 대한 논란들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 쟁점들을 짚어보기 위해 금융시장이 하나의 도로라고 생각해 보자.이 도로에는 저마다 신속하게 목적지에 도착하고자 하는 자동차들이 달리고 있다. 자동차는 금융회사들이고 그들의 목적은 덩치를 키우면서 동시에 이익도 내는 것이다. 어느 날 이 도로에 차 한 대가 고장 나 멈춰 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목적지에 빨리 가고자 하는 '이기심'에 한두 대씩 신호와 차선을 위반하기 시작하고 얼마 안가 도로는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사고가 날 우려도 있다. 교통경찰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경찰이 나서서 다른 차량들의 이기심을 통제해야 도로가 빨리 정상을 찾을 수 있다. LG카드가 유동성 위기에 몰렸을 때 금융감독원이 재빨리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금융사들은 저마다 채권 회수에 나섰을 것이고 금융시장에는 일대 혼란이 일었을 것이다. 금융질서를 유지하는 것과 관에 의한 시장개입,즉 관치는 이 점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그런데 금융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운전자 중에는 더러 외국인들도 있게 마련이다. 평상시에는 이 외국인들도 내국인 운전자와 똑같이 신호와 차선을 지키며 주행한다. 그러나 앞서의 예처럼 금융당국의 '교통정리'가 필요한 상황이 벌어지면 태도는 달라진다. 이들은 외국인임을 내세워 당국의 교통정리를 벗어나려는 경우가 많다. 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보면 교통정리는 지체되고 질서는 무너진다. 금융시장에서 '자본의 국적성'이 문제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외환위기를 겪은 후 한 때 국내 경제계에서는 '자본에는 국적이 없다'라는 명제가 유행어처럼 자주 입에 올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적어도 금융자본 만큼은' 국적을 따져볼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빈발하고 있다. LG카드의 채권은행들이 이 회사를 외국인에게 넘기지 않고 스스로 인수하기로 한 것은 그런 점에서 잘한 결정이라고 본다. 산업자본의 금융업 영위 문제도 앞서의 금융 고속도로 상황에서 살펴볼 수 있다.고장 차량은 다른 곳으로 견인됐고 교통상황도 정상을 회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잘 살펴보니 앞서 사고가 발생했던 지점을 지나가는 차들은 한결같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상황이 그렇다면 이제는 도로설계나 구조가 혹시 잘못된 것은 아닌지를 따져봐야 한다. LG그룹이 금융업에서 손을 떼기로 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역시 산업자본은 금융업을 해서는 안된다"는 식의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일부 언론은 이에 동조하는 기사를 다루기도 했다. 하지만 카드사 부실이 LG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상기하면 이런 유의 결론은 성급한 것이다. 국민카드 외환카드 우리카드 등 금융업을 모태로 하는 카드사들도 부실화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GE캐피털 등의 사례를 감안하면 이번 카드사 부실 문제를 '산업자본의 금융업 영위 불가론'의 근거로 삼는 것은 지나친 단견이다. 오히려 허다한 관념적 이유로 국내자본의 금융업 진출이 봉쇄되어 왔던 결과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우리금융을 매각하기 위해 전직 장관이 사모펀드까지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