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정치개혁 입법논의가 한창인 가운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17일 자신의 구체적인 개혁대안을 제시한 것은 정치개혁에 대한 대(對) 정치권 압박성격이 강하다. 대선자금 수사로 `낡은 정치' 타파에 대한 여론이 숙성하고 있으나 정치적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국회 소수파로서 입법 주도권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이직접 나서 개혁의 목소리를 키움으로써 측면 지원을 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또 불법 대선자금 추문에 발목잡혀 여야 가릴 것없이 비판을 받고 있음에도 소위 `10분의 1' 발언을 통해 `비교우위'를 강조한 연장선상에서 정치개혁의 화두를선점하겠다는 의도도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노 대통령은 이날 대선자금 수사로 정치자금 제도개선에 대한 공론은 무르익어가고 있다고 보고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제도적 대안 제시에 초점을 맞췄다. 요체는 각 당의 이해관계가 얽혀 진전이 더딘 선거구제 개편이다. 노 대통령은먼저 특정정당이 영.호남 등 특정지역 의석을 독식하는 소선거구제가 지역주의 해체를 가로막고 있다면서 한 지역구에서 2-5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토록 함으로써 여러당이 의석을 나눠가질 수 있는 중대선구제 도입을 최선책으로 내놨다. 노 대통령은 중대선거구제 도입시 선거비용이 더 들 것이란 지적에 대해 "실증적 근거가 없다"며 "고비용문제는 투명한 정치자금제도, 선거공영제도, 엄격한 단속과 처벌에 의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고 그 길이 정도"라고 반론을 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반대하고 있는 점을 감안,차선책으로 최근 김원기(金元基) 우리당 의장이 제시한 바 있는 도농복합선거구제와함께, 소선거구제 유지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시했다. 노 대통령은 "농촌과 소도시는 소선거구, 인구밀집도가 높아 지역대표성의 의미가 크지 않은 대도시는 중대선거구로 하는 도농복합선거구제도 검토할만하다"며 "이안은 농촌과 소도시의 지역대표성도 유지하고 지역구도 해소라는 취지도 살릴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소선거구제를 고수해야 한다면 서울 활동 인사들의 독무대가될 수 밖에 없는 현 전국단위 비례대표제 대신 최소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그래야 한 지역에서 여러당 국회의원이 나올 수 있고, 이것이 분권과지방화 대세에도 맞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의 이같은 입장은 현재 정치권 상황을 감안할 때 중대선거구제나 도농복합선거구제 개편은 어렵지 않느냐는 판단에 따라 최소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도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지역구도 타파에 기여하기 위해선 비례대표 의석수를 지역구의 50% 수준으로 확대하고 그 경우 지역구를 줄이는 것보다 의원 정수를 늘리는게 옳다"는 세부 논리까지 곁들인 것이 그런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 대통령은 "현 상황에서 지역구 의석수를 줄이면 많은 농어촌에서 2-4개의 자치행정구역이 하나의 선거구로 통폐합돼 지역대표성이 무너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또 의원정수를 늘리는 데 대한 비판여론에 대해서도 "인구수와 비교할때 많은 수가 아니다"며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질"이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노 대통령은 지구당을 국민 참여의 주요 통로이자, 정당정치의 주춧돌로규정, 폐지보다는 운영혁신으로 개혁방향을 모색해 줄 것을 국회에 요청했다. 노 대통령은 "지역주의 극복은 우리 정치가 해결해야할 최대 숙제로, 이 문제만큼은 당리당략이나 의원 개인의 이해관계를 털어 버리고 국민과 나라를 위해 결단해주기 바란다"며 "저는 내년 총선에서 지역주의 정치질서만 타파될 수 있다면 책임총리제를 비롯해 대통령으로서 할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기자 un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