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과 함께미군의 `최우선 수배자'였던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8개월여에 걸친 미군의 끊질긴 추적끝에 13일 체포됐다. 이로써 바그다드 함락과 함께 사실상 붕괴된 `후세인 시대'는 실제로 마감되면서 역사의 무대 너머로 사라지게 됐다. 미군의 후세인 추적은 4월9일 바그다드 함락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됐지만 3월20일 이라크전 개전과 함께 개시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미군은 3월20일 이라크 개전과 함께 후세인이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던 바드다그 남부의 한 주택에 크루즈 미사일을 발사, 그를 사살하려 했지만 후세인은 폭격 수분전에 이동해 화를 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바그다드 함락 이틀전인 4월7일 미군은 정보당국이 입수한 정보에 따라 후세인과 그의 핵심 측근들이 머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바그다드의 한 건물에 B-1폭격기를 동원해 폭격을 가했지만 실패했다. 후세인은 바그다드가 함락된 4월9일 군중들에게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뒤 도망자 생활에 들어갔지만 오디오 테이프 공개와 연쇄 폭탄테러 등 저항세력에 대한지원 등을 통해 미군을 조롱했다. 4월11일 미군은 후세인과 아들 쿠사이 및 우다이 등 모두 55명의 후세인 정권시절의 고위인사들이 포함된 `지명수배자' 명단을 발표했다. 하지만 후세인은 이날바그다드 교외의 아드하미야에서 열린 금요 기도회에 참석한 것으로 보도돼 미군의체면을 구기게했다. 5월1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종전선언 이후 미군은 후세인 체포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고, 6월18일 시리아 국경지대에서 후세인과 그의 아들이 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에 항공기를 동원해 폭격을 가했지만 이마저도 실패했다. 7월3일 급기야 미군은 후세인 체포에 도움을 주는 정보를 제공하거나 후세인이 사망했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사람에게 현상금 2천500만달러를 내걸었고, 아들 우다이와 쿠사이에게는 1천500만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7월22일 미군은 극비에 입수한 첩보에 따라 이라크 북부의 모술에 있는 한 마을을 급습, 후세인의 아들 우다이와 쿠사이를 사살했다. 하지만 하루뒤 아랍계 알-자지라 방송은 이라크 국민들에게 미군점령에 저항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목소리를 방송했고, 미 중앙정보국(CIA)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아마도' 후세인 같다고 밝혔다. 7월27일 미군은 후세인 정권 시절의 보안군 관계자로 부터 입수한 정보에 따라후세인의 고향 티크리트에 있는 농가 세곳을 급습했지만 후세인은 24시간 전에 이곳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8월31일 미군은 후세인이 변장을 하고 한 의사를 방문했다는 보고에 따라모술지역을 정밀수색했지만 허사였고, 9월17일에는 후세인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담긴 또 다른 테이프가 공개되어 `미군은 이라크를 떠나고, 이라크인들은 점령군에대항해 싸우라'는 메시지가 방송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변장을 하고, 고향 티크리트의 한 농가에 숨어있던 66세의 노인은 13일`붉은 새벽'이란 작전명속에 진행된 미군의 급습에 저항도 하지못한채 체포됐다. 이로써 사담 후세인 시대는 정말로 종언을 고하게 됐고, 아프가니스탄 종전에도불구하고 오사마 빈 라덴의 체포에 실패한 미군은 구겨진 자존심을 일부 회복하게됐다. (함부르크.바드다드 dpa.AP=연합뉴스) a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