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대륙을 얘기할 때는 탐험가였던 노르웨이인 아문센과 영국인 스콧이 등장하곤 한다. 이들 두 사람의 남극점을 향한 경쟁은 불꽃을 튀길 정도였는데 아문센이 스콧보다 한달 가량 앞선 1911년 12월14일 먼저 극점에 도달해 국기를 꽂았다. 조국 오슬로를 떠난지 1년 6개월,전진기지를 세운지 11개월만의 일이었다. 그들 일행이 지닌 장비라곤 아주 초보적인 위치 측정기구와 망원경,개 썰매와 스키가 고작이어서 장기간에 걸친 탐험의 고통을 짐작할 만하다. 남극이 처음 발견된 것은 1819년 벨링스하우젠이 이끄는 러시아 해군탐험대에 의해서였다. 이보다 훨씬 전에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이 남극권에 도달하기는 했지만 이곳이 대륙인지 거대한 얼음 덩어리의 빙하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 20세기 들어 대륙탐험은 경쟁적으로 일어났고 대륙에 대한 연구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야 본격화됐다. 지구상에서 가장 늦게 발견된 남극에 대한 각국의 관심은 지대하다. 남미대륙만한 면적에 석유 가스 등 자원이 무한하게 매장돼 있을 뿐더러 해양수산자원 역시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미국과 유럽국가들은 다투어 진출했고 급기야 국제 영유권분쟁까지 일자 과학조사와 학술적 이용을 내용으로 하는 '남극조약'으로 그 다툼을 종식시켰다. 각국이 기지 건설을 하는 것은 향후 주인 없는 땅에서 기득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1988년 세계에서 16번째로 세종과학기지를 설치했는데 자원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연고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임은 물론이다. 이곳에 근무하는 한 과학도가 조난됐다가 끝내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생사를 오가는 극한의 환경에서 도전정신을 불사르던 이 젊은 과학도는 국가의 당면과제인 자원부족을 해결해 보겠다는 꿈을 채 이루기도 전에 희생된 것이다. 그의 사망을 계기로 남극에 대한 중요성이 새로 인식되고 미지의 분야에 대한 도전정신이 확산됐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개인이나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도전정신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