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의 작가 윤흥길이 여섯번째 창작집 '소라단 가는 길'(창비)을 냈다. 이번 작품은 '장마'와 짝을 이루는 연작소설로 환갑을 눈앞에 둔 초등학교 동기들이 어린 시절 겪었던 전쟁의 참상을 담담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아이들의 눈에 비친 전쟁은 끔찍하다거나 참혹하지만은 않다. 소설에서 묘사되는 전쟁은 아이들이 '호젓헌 구석에서 즐긴' 전쟁이며 순진무구한 동심과 '발랑까진 악동세계'가 공존하는 전쟁이다. 이 때문에 전쟁소설이라는 외형에도 불구하고 무겁게 읽히기보다는 때로 익살이 넘치고 때로는 목울대를 잠기게도 만든다. '묘지 근처'는 '장마'와 가장 유사한 구조를 지닌 작품이다. 국군으로 전쟁에 나간 삼촌을 둔 화자 유만재는 '장마'에서 삼촌과 외삼촌 모두를 전쟁통에 잃어버린 동만이를 연상시킨다. 삼촌은 상이군인이 된 채 전쟁에서 돌아오지만 만재의 할머니는 그의 귀환을 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다. '농림핵교 방죽'은 '발랑까진' 악동들의 세계를 가장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전장의 피냄새는 후방에까지 전염돼 아이들을 싸움질로 내몬다. 주인공 김지겸은 모범생이지만 싸움질에 휘말려 갓 부임한 담임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듣는다. 그렇지만 싸움은 그치지 않고 아이들은 급기야 방죽으로 떠밀려온 혼혈아의 시체에 돌을 던지기까지 한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쫓아내고 혼혈아의 시체를 안고 나오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는다. 작품에는 전쟁상황을 고발한 내용들이 많지만 전쟁을 혐오한 나머지 이를 관념적으로 거부하는 경향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전쟁을 현실로 끌어안으며 그 피폐한 정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끈질긴 인간 본성에 더 중점을 둔다. 특히 전쟁통에 바보가 된 슬픈 인간군상을 그린 '안압방 아자씨'나 이념 때문에 상처받는 동심의 세계를 담은 '큰남바우 철둑'은 전쟁을 직접 체험해 보지 못한 전후세대들에게 적지 않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이번 작품을 연민과 성장의 소설로 정의한 문학평론가 정호웅은 "전쟁에서 희생된 영혼들의 원한을 푸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원한으로 인해 생겨난 우주의 아픔,부조화까지 바로잡는 힘을 지녔다"고 말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