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소비자 보호를 위해 주택 후분양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뒤 처음으로 후분양제 도입 및 활성화 방안이 국토연구원에 의해 마련됐다. 후분양제는 소비자 선택권을 늘려주는 대신 가수요를 억제, 시장교란 현상을 줄여주는 장점이 있지만 전면 도입하면 주택업체의 자금동원 부담이 가중돼 일부 업체의 퇴출이 불가피하고 더불어 공급 위축과 분양가 및 기존 집값 상승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게 국토연구원의 분석. 따라서 전면 도입하기보다는 내년 상반기 일부 공공 및 민간부문에서 시범 도입한 뒤 문제점을 보완해가며 점진적으로 활성화해 수도권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는2006년 상반기 공공부문에서, 그리고 2007년 상반기 민간부문에서 본격 도입해야 한다는 게 결론이다. 건설교통부는 28일 공청회를 통해 발표된 방안과 이날 나온 의견을 토대로 후분양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선분양제 장단점 = 주택 선분양제는 주택건설업자에게 주택수요와 건설금융을미리 확보할 수 있게 해 사업의 위험성을 낮춰주고 소비자에게도 시장가격보다 낮은가격으로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 사실. 정부도 주택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제도를 통해 건설업체와 소비자의 시장 참여를 유도, 단기간에 대량의 주택을 공급해 왔으며 그 결과 2002년말 현재 주택보급률이 100.6%에 이르렀다. 그러나 실수요자 뿐 아니라 매각 차익을 노린 가수요자까지 선분양 시장에 끌어들였고 분양권 전매까지 허용되면서 주택시장 불안을 야기하는 주된 요인이 됐다. 주택사업자는 완공까지 2-3년간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분양가에 얹어 실제비용보다 과다계상하는 경향을 보였고 분양가 자율화 이후 주변시세를 반영, 기존주택가격과 분양가가 서로를 끌어올리는 악순환이 생겼다. 또 소비자가 완제품이 아닌 모델하우스만 보고 구입하기 때문에 입주한 뒤 구조를 변경하거나 내장재를 교체하는 일이 비일비재, 자원 낭비라는 지적이 많았다. ◆후분양제 필요성 = 따라서 선분양을 통해 다수 비전문가(소비자)가 사업 위험을 안고 시장에 참여하는 것은 후분양제 아래서 소수 전문가(주택사업자)가 사업 위험을 안는 것보다 시장교란 가능성이 많다는 분석이다. 또 선분양제는 그대로 유지된 채 분양가만 자율화된 상황에서 선분양을 통한 자금조성 구도가 바람직한지 재검토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 이와 함께 주택부족 현상이 어느정도 해소된 상황에서 소비자 부담을 볼모로 정부가 주택의 대량 공급을 위해 건설업체를 지원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주택시장이 공급자 위주에서 수요자 위주로 재편되면서 소비자의 상품선택권을 확대하고 주택품질제 도입 등을 통해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며 소비자의 위험 부담을 덜어줄 필요성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후분양제 파급효과 = 그러나 모든 주택사업이 후분양제로 전환될 경우 주택업체는 그동안 소비자로부터 받았던 연간 21조9천억원 규모의 선분양자금을 다른 공급선에서 조달해야 한다. 물론 점진적인 후분양제 전환 방안의 하나로 공정에 따라 분양시기를 조정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자금소요액은 30% 시공후 분양할 경우 11조2천억원, 50% 시공후분양할 경우 14조2천억원, 80% 시공후 분양할 경우 18조8천억원으로 줄어든다. 또 선분양에 동원되는 21조9천억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11조원이 소비자가 은행에서 조달하는 중도금 대출인 점을 감안하면 후분양으로 인한 추가 건설자금은 어차피 같은 은행권이 주택업체에 대출하거나 투자해야 하는 몫이라는 것. 이와 함께 소비자금융은 주택사업자에게 부채로 잡히지 않지만 금융기관 대출은부채로 계상되기 때문에 후분양 전환시 부채비율이 급증하고 자금조달 및 수요확보등의 측면에서 사업위험이 크게 높아지게 된다. 2002년 6월 현재 건설업 부채비율이 280.2%로 제조업(135.6%)보다 배 이상 높은실정임을 감안하면 후분양 전환시 사업회계를 사업주와 분리, 주택업체 부채비율을완해해 줄 필요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주택공급과 집값 영향 = 자금동원력 없는 사업자는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다. 지난 1999-2001년을 기준으로 영업활동에 따른 현금 흐름이 마이너스(-)인 업체의 주택건설 실적이 연평균 10만4천663가구로 총 실적(45만6천19가구)의 22.9%인 점을 감안하면 당장 이 물량이 줄어들 소지가 있다는 것. 물론 현금 흐름이 플러스(+)인 업체에서도 공급 중단 사태가 생겨 공급이 더 줄어들 수도 있고 공급 중단을 대체할 자금동원 능력이 있는 회사가 새로 나타나 공급감소가 더 작게 나타날 수도 있다. 후분양시 분양가 상승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선분양 때와 같은 수익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50% 공정 후 분양하는 경우와 완전 준공한 뒤 분양하는 경우로 따져볼 때 소형주택은 각각 6.2%와 11.1%, 중형주택은 8.3%와 11.6%, 대형주택은 8.4%와 12.1% 상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납금에 대한 이자를 고려한다면 실질 분양가 상승률이 소.대형은 6.1%, 중형은 5.6%일 것으로 추산됐다. 이와 함께 후분양제로 공급이 15-30% 줄어든다고 가정하면 단기적으로 아파트의가격은 2-4.1% 추가 상승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집값 상승이 수요를 감소시키고 공급을 늘려 집값이 다시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분양제 도입 전제조건 = 후분양 전환에 따른 추가 건설금융 소요액을 국민주택기금에서 저리로 지원하는 방안이 검토돼야 하며 소형주택의 경우 선분양과 같은 수익률을 유지하려면 기금 대출규모가 금리 수준에 따라 가구당 900만-1천900만원인 것으로 분석됐다. 중형은 4천300만-1억200만원을 빌려줘야 한다. 민간건설금융 확대를 위한 프로젝트 파이낸싱과 소비자를 위한 장기주택자금 대출 등도 필요하다. 후분양제가 시행되면 분양권 전매시장은 자동 소멸되지만 선분양이 공존하는 상황에서는 전매를 금지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민간부문이 국민주택기금이나 공공택지 지원을 받아 건설하는 18-25.7평에 대해후분양제를 의무화하거나 선분양시 분양가를 규제하는 방안과 주택의 품질을 확보할수 있는 대책도 마련돼야 할 것으로 나타났다. 청약제도는 일단 기본취지를 살려 실수요자를 위주로 운영하되 장기적으로는 청약제가 폐지될 시기를 고시한 뒤 청약통장 가입자가 자동 소멸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국토연구원 주장. 그러나 청약제를 폐지하면 정부정책에 맞춰 새 집을 마련하기 위해 적지 않은금액을 예치한 기존 600만명 이상 가입자의 반발이 예상되고 청약경쟁이 다시 과열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강의영기자 keykey@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