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2차 고위급 이라크 추가 파병협상을 앞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한국은 국내외적 상황 변화를 거론하고 공식협상이 시작되기 전에 이례적으로파병지침을 발표, 미국의 요구에 대해 일정한 선을 긋고 나선 반면 미국은 1차 한.미 파병협상의 내용을 전격 공개하고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를 언급함으로써 한국을압박하고 있다. 한.미간의 이같은 난기류는 파병협상을 앞두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상의 이유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지만 파병협상이 잘못될 경우에는 양국 동맹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부차관보는 지난 14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5∼6일 파병협상에서) 미국은 이라크 주둔 주력부대가 교체되는 내년 2월께 파병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며 "한국은 4월 또는 5월을 거론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한국 정부가 '내년 4월 총선이후 파병' 보도를 강력히 부인해왔던 만큼롤리스의 이같은 언급은 한국에 대한 압박 내지는 경고용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대응을 자제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상당히 불쾌하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한국은 1차 파병협의 때 "내달 파병 국회동의안이 처리된 뒤 파병군 선발과 훈련, 수송 등을 감안할 때 실제 배치는 내년 4, 5월께 이뤄질 것"이라고 파병시점을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혁(李秀赫) 대미 파병협의단 수석대표는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개괄적으로 언제 국회 동의안이 처리.제출되고, 금년 정기국회가 언제 끝난다든지, 파병 준비기간이 얼마나 소요된다든가 하는 데 대해 의견교환은 있었으나 어떤 시점을 잡아서 하지는 않았다"고 부인했었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도 14일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미군 관계자들과만나 "미국은 미군 재배치 문제에 대한 예비결론을 내렸고 이제 동맹국 및 의회와이 문제를 논의할 단계로 내달중 방안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주한미군을 한반도 이외 지역에 투입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언급은 사실상 한국의 '아킬레스 건'인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를 거론하고 나선 것으로, 2차 파병협상을 목전에 둔 시점에 제기됐다는 점에서 미묘한 파장을 초래할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있다. '주한미군 재배치는 한반도 안보상황을 지켜보며 안보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신중히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분명히 부담스러운 대목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 건(高 建) 총리가 14일오후 `한.미 원로협의회'의 미국측 대표들을 면담한자리에서 ▲한반도 전쟁억지력이 저해돼서는 안되고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원칙이 어느 정도 결정된 후에 이뤄져야 하며 ▲한반도 전쟁 발발시 미군의 자동개입이보장돼야 한다는 내용의 주한미군 재배치 3원칙을 강조한 것도 한국 정부의 우려를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이 사실상 '비전투병 3천명 이내 파병' 방침을 공식화한 13일 토머스 허바드 주한미국대사가 강연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전투병 파병'이란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도 한국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됐다는 관측이다. (서울=연합뉴스) 추승호 기자 ch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