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일이 넘는 장기간 한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맞서온 한진중공업 노사분규는 결국 김주익 노조위원장의 죽음이 분수령이 됐다. 지난달 17일 김 위원장이 노조원들의 이탈을 안타까워하며 목매 자살하자 회사가 여론을 의식하면서 수세에 몰렸고 결국 노조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게 된 것이다. 또 김 위원장의 자살을 계기로 외주업체들의 조업까지 전면 중단되면서 매출손실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더이상 버티기 힘들었던 데다 외주.협력업체들마저피해액이 800억원으로 늘어나는 등 도산위기에 직면해 회사의 입지를 더욱 좁게했다. 특히 설상가상으로 일부 해외선주사들의 잇단 계약 해지 통보는 회사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선주사들이 계약을 해지할 경우 회사로서는 회복 불능의 치명타가될 수도 있다고 회사는 판단했다. 선주사들의 최후통첩이 계속되면서 더이상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회사는 6차교섭에서 요구했던 5년간 무분규 선언을 철회하는 한편 노조와 노조간부에 대한 손배가압류 취하와 해고자 복직까지 모두 양보하게 된 것이다. 이와함께 그동안 노사협상을 이끌어 온 양성집 전무와 김재천 전무 등 임원 2명을 전격 해임했으며 앞으로 조합활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손배가압류를 하지 않기로약속까지 했다. 회사가 완전 백기를 든 것이다. 한진중공업 사측의 `백기투항'은 재계로부터 거센 비난을 살 것으로 보인다. 재계는 그동안 김 위원장의 죽음이 노조탄압으로 매도되거나 노조의 불법행위에대한 면죄부가 돼서는 안된다며 노동계에 대해 죽음을 빌미로 과도한 요구나 불법.강경투쟁을 선동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해 왔다. 법과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재계입장이 결국 무산된 것이다. 반면 노동계는 한진중공업 노조가 노조와 노조원에 대한 손배가압류 취하와 해고자 복직 문제를 일시에 해결함으로써 좋은 선례를 남긴 것으로 긍정적인 평가를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계는 손배가압류를 통해 노조의 파업을 무력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한진중공업이 보여줌으로써 선진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손배가압류를 제한해야한다며 정부와 재계를 압박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c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