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증권이 `위기냐 기회냐'의 기로에 놓여있다. 정상영 금강고려화학(KCC) 명예회장측의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매집으로 현대증권의 내부 역학구도마저 변화될 가능성이 높아진 데다 회사내 최고경영진간의 알력까지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출자회사인 현투증권의 매각을 둘러싼 책임 문제와 통합선물시장 출범에 따른 손실 가능성까지 겹치는 등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현대증권 역학구도= 정상영 회장측이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의 40% 이상을 확보하고 사실상 최대 주주가 되면서 현대증권의 역학구도가 바뀔 가능성이 커졌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상선, 현대증권, 현대택배, 현대아산 등 '정몽헌 계열사'의 지주회사로 현대증권의 최대 주주가 현대상선(16.6%), 현대상선의 대주주가 현대엘리베이터(15.2%)라는 지분 관계를 감안하면 현대증권의 사실상의 대주주가 고(故)정몽헌 회장에서 정상영 회장으로 바뀐 것. 따라서 `정몽헌 체제'에 속하는 현대증권이 경영진 교체 등 `정상영 체제'로 변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현대증권 최고경영진간 알력= 현대증권 조규욱 부회장과 김지완 사장간에 최종 결재권자가 `부회장이냐, 아니면 사장이냐'를 놓고 맞서는 등 경영 방식을 둘러싸고 불거지고 있는 알력과 갈등이 최근의 역학구도 변화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종전 체제인 `홍완순 부회장-조규욱 사장' 당시에는 홍 부회장의 배려로 최종결재권자가 사실상 조 사장이었으나 조 사장이 부회장이 되면서 주요 사항에 대한결재와 승인을 요구하면서 두 사람간의 관계가 불편해졌다는 것이다. 특히 조 부회장이 정상영 명예회장과 용산고 동문으로 돈독한 관계로 알려지면서 조 부회장과 김 사장간의 대립은 정 명예회장이 조 부회장을 통해 현대증권을 장악하려는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이거나,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인사 회오리= 이에 따라 `정몽헌 계열' 인사들이 포진한 현대증권 간부들에대한 대규모 물갈이를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다. 정몽헌 회장 사람들인 이사급 이상 주요 간부들을 정 명예회장이 예외 없이 바꿀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조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인맥이 구축될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정몽헌 계열로 분류되는 김지완 사장이 `부산상고' 출신으로 정치적 의미가 있는 인물인 데다 임기가 많이 남아 있어 `인사 처리'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취임 직후 130개가 넘는 지점을 순회하며 "조직을 슬림화하겠다"는 김사장의 구상도 조 부회장 등의 견제로 인해 실현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문제는 경영진간의 대립이 장기화할 경우 `줄서기' 등 후유증으로 회사의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데 있다. ◆`삼촌이 조카를...'= `정몽헌 체제'로 분류되는 현대증권 내부에서는 정 명예회장의 현대엘리베이터 매집에 대해 `삼촌이 조카의 재산을 가로채려 한다'는 반감이 팽배하다. 통합선물시장 출범과 현투증권 매각 문제로 손실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집안 문제로 분란을 자초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정 명예회장이 물갈이를 시도할 경우 현대증권이 현재의 위기를 헤쳐나가기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반발도 엄존하고 있다. 이와 관련, 증권업계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이 현대증권을 비롯한 현대 계열사를 장악하려 할 경우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현대차는 금강고려화학의 주요 고객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몽구 회장이 최악의 경우 금강고려화학과의 거래 단절 등 초강수 카드를 빼내`교통정리'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통합선물시장 출범.현투증권 매각= 내년부터 선물거래가 부산선물거래소로 통합되면 현대증권은 KOSPI 200 선물거래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 통합선물시장이 출범하면 증권거래법 적용을 받던 KOSPI 200 선물거래가 선물거래법으로 이관되는데 이 법은 부실 금융기관 대주주의 신규 사업 진출을 막고 있다. 현대증권은 과거 파산한 현대생명과 매각 대상에 오른 현투증권의 대주주다. "종전까지 해오던 선물거래의 관할 기관이 바뀌었다고 사업을 제한하는 것은 일종의 소급 적용과도 같다"는 게 증권측의 주장이다. 현대증권은 선물거래가 금지될 경우 유.무형의 피해가 적지 않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실현 여부와 관계 없이 현대증권 매각 문제가 불거지는 것도 골칫거리다. 현대증권을 매각해 공적 자금 손실분을 충당한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지만 민간기업의 매각대금을 공적 자금으로 전환할 근거가 박약하고 현대증권 이사회를 통해매각을 결의할 경우 `배임'이 될 수도 있다는 게 현대증권 노조의 판단이다. 여기에 책임 주체로 거론되던 정몽헌 회장이 사망한 데다 지주사인 현대엘리베이터의 대주주도 바뀌는 등 사정 변경도 고려해야 한다는 게 노조측의 반론이다. 노조측은 "우량 민간 기업을 매각할 경우 강제 매각이라는 법적 논란을 일으킬수 있다"고 지적하고 "다만 현대증권은 대주주로서 현투증권의 부실에 대해서는 책임진다는 각오"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강원기자 gija00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