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문학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산문집 '그와의 한 시대는 그래도 아름다웠다'(현대문학)가 나왔다. 이번 산문집의 소재는 돌 나무 강물 등 세가지다. 지나치게 지적이거나 현학적이지 않은,평범하기만 한 이 글감들은 40년에 걸친 작가의 이력을 은근히 드러내는 주요 매개체다. 저자에게 돌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여행이자 삶의 궤적을 상징한다. 그는 수석 애호가는 아니지만 그저 '스쳐지나간 길 위의 시간들을 기억하기 위해' 하나둘씩 모은 돌이 집안을 가득 채울 정도가 됐다. 울릉도 검은 현무암 한 조각에선 홍성원 김병익 김원일 등과의 뱃길 여행을,제주도 화산석에서는 오규원 시인과의 젊었던 시절을,사해의 붉은 돌에선 김현과의 한때를 떠올린다. 강물은 '떠남'과 '세월'을 의미한다. 저자는 강물에 떠나는 세월이 남긴 지울 수 없는 '상실감'과 그 헛됨을 끌어안고 흐르는 '위대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병치시킨다. 저자는 또 오랜 시간이 흘러도 한자리에 서 있는 나무에서 변치 않는 사람을 본다. 산골 외딴집에 홀로 살고 있는 김영남 시인의 노모,소설가 송기숙씨의 어린 시절을 들려준 소설가의 아저씨뻘 되는 친척,그리고 "청준이,제발 늙지 마소.병들지 마소이!" 하며 불편한 몸으로 배웅하던 한승원 선생의 노모 등 남도 여행을 하면서 만난 '나무 같은 사람들'과의 추억을 하나 둘 풀어낸다. 저자는 책 말미 '자신을 씻겨온 소설질'이라는 글을 통해 "내가 활동한 시기는 5·16 군사쿠데타,10월 유신,5·17 광주항쟁 등 극심한 정치·사회적 격변기였다"면서 "이 속에서 우리 누구의 삶도 부끄러운 죄의식과 무력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겠지만…. (중략) 내 부끄러움과 아픔을 견디고 그것을 세상에 드러내 보임으로써 자신의 삶과 정신의 틀을 지탱해 보려던 계략이 소설질"이었다고 말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