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자살 직전 검찰에서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측의 해외계좌로 송금했다고 진술한 3천만달러의 행방이 새삼주목받고 있다. `3천만달러'의 행방은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이 선거 때 한 몫을 챙겨서 외국에빌딩도 사고 자식에게도 물려주고 있다는 일부 정치인들의 `부정축재' 행태를 비판한 발언과 맞물려 불법 외화도피 행각에 대한 검찰 수사의 향배와도 결코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권씨는 현재 3천만달러 수수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은 이익치씨가 "권씨측에서 외화로 3천만달러를 달라고 한다"고 보고하면서 권씨측 해외계좌 번호가 적힌 쪽지를 정 회장에게 건넸다고 말한 진술에 상당한 신빙성을 두고 있다. 당시 정 회장의 지시를 받아 이씨가 쪽지로 건네준 계좌로 3천만달러를 송금한장본인이 바로 현대상선 전 사장이었던 김충식씨였으며, 정 회장은 이후 김 전 사장으로부터 송금이 완료됐다는 보고를 받았고 김영완씨로부터도 `돈을 잘 받았다'는취지의 얘기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이에 따라 정 회장의 오랜 친구로 3천만달러가 해외계좌로 송금된 2000년 1월당시 현대상선 미주본부장을 맡았던 박기수씨에 대한 재소환이 이뤄질지 여부도 주목된다. 박씨는 지난 8월 4일 정 회장이 투신자살한 당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으나 3천만달러 송금 등 현대측의 자금 문제에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으나 검찰로선 현대상선 고위 임원들과 더불어 재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권씨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드러난 김영완씨가 정 회장의 해외 송금에도 관여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3천만달러가 미국 또는 스위스 비밀 계좌로 유출된 것이아니냐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미국 시민권자 인지 여부가 다소 불투명하지만 김영완씨는 미국 시민권자인 자신의 형이 대표로 재직한 외국계 투자회사의 국내법인을 통해 거액의 재산을 해외로빼돌렸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어 이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히 한인들이 미국 뉴욕 유엔본부 앞 맨해튼 지역에 있는 고급 아파트 250채를소유하는 등 재산 해외유출 행각 등이 주목된다는 보도까지 나오자 검찰은 3천만달러의 행방이 미국 부동산 투자와 관련성이 있는지 여부도 면밀히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미국 교포사회의 경제 규모가 그다지 성장세를 지속하지는 않았다는 점을감안하면 1채당 수십만∼수백만달러를 호가하는 이들 지역의 아파트를 집중 매입하는데 사용된 자금들은 아무래도 국내에서 빠져나간 '검은 돈'일 가능성을 배제하기어렵다. 검찰은 또 정 회장이 권씨에게 송금한 3천만달러 가운데 일부가 스위스에 있는은행계좌에 남아있다는 첩보까지 입수해 사실 여부를 확인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검찰은 3천만달러 송금이 현대 해외지사에서 해외계좌로 빠져나가는 형식을 취한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3천만달러가 실제로 권씨쪽으로 흘러들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송금에 관여한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을 비롯, 현대상선 미주본부 회계책임자들에 대해 소환을 통보했지만 이들이 모두 해외 체류중이라는 사정도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검찰로서는 현대상선을 통해 김 전 사장이 송금했던 해외계좌 번호를 입수해 해당 은행에 계좌 명의인을 알려줄 것을 요청할 수 있지만 고객 비밀 보호를 가장 중하게 여기는 외국 은행에서 이에 순순히 협조할지도 미지수다. 그렇다고 우리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해외 은행을 상대로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강제로 계좌추적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도 수사의 걸림돌로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 정 회장이 사망하고나서 권씨와 박지원씨의 현대 비자금 수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증인으로 남은 김영완씨가 귀국 의사를 보이지 않아 검찰로서는 고민이 더욱 깊어지는 상황이다. (서울=연합뉴스) 조계창 기자 phillif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