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굵직굵직한강력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으나 수개월이 지나도록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미제사건이 넘쳐나면서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특히 이들 미제사건 대부분은 부유층이 모여사는 강남지역 주택가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피해자들이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 미제사건 `수두룩' = 지난 3월30일 40대 부부가 대전에서 여대생 문모(21)씨를 납치, 서울 방배동의 지하방에 가두고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수사 끝에 6월께 이들 부부의 신원을 파악했으나 넉 달이 지도록 아직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어 4월6일에는 서울 삼전동 다세대 주택에서 주인 박모(46.여)씨의 아들 전모(25)씨와 딸(22), 딸의 남자친구 김모(29)씨가 흉기에 난자당한 채 숨지는 참혹한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범행 뒤 현장에 불을 질러 화재진압 과정에서 증거물이 모두 소실되는바람에 서울에서 내로라 하는 수사인력 100여명을 투입하고도 사건발생 반년이 넘도록 미제상태로 남아있다. 관할 수서경찰서 관계자는 "더는 나올 단서가 없다"며 "범인이 자수를 해오거나천운(天運)을 기대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답답한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5월22일에는 서울 서초동 한 아파트에 통계청 공무원 김모(44.여)씨가 자신의 집 안방에서 손과 발이 묶이고 머리에 비닐봉지가 씌워진 채 숨졌다. 경찰은 가족과 주변인물을 상대로 수사를 벌였지만 별 진전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전담반 역시 현재 일반적인 사건 해결에 신경을 쓰는 등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다. 9월 들어 유사한 방법으로 살해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시민들은 더욱 불안에떨고 있다. 지난달 2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모 여대 명예교수 이모(73)씨 부부가 머리에 둔기를 맞아 숨진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2주만인 지난 9일 서울 구기동 주차관리원 고모(61)씨의 집에서 어머니 강모(85)씨 등 일가족 3명이 숨졌다. 두 사건이 미궁에 빠져가는 동안 16일 서울 삼성동에서 군납업체 사장을 지낸최모(71)씨의 부인 유모(69)씨가 피살된 채 발견됐다. 이들 피살 사건은 수십억원 대의 재산가가 사는 2층 단독주택에서 힘없는 노인을 대상으로 한 흉기 살인사건이지만 없어진 금품이 발견되지 않아 뚜렷한 범행동기를 찾을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 불안한 시민 = 이 같은 강력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데도 경찰이 범인을잡지 못하자 시민들의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서울 역삼동의 김혜진(30)씨는 "6월 `납치공포'에 이어 최근 노인대상 범죄가많아진다는 보도에 출근 후 연로한 부모님에게 문단속을 꼭하라는 당부하고도 자주전화를 한다"며 "외딴 곳도 아닌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어떻게 이렇게 큰 사건들이발생할 수 있느냐"고 경찰의 수사능력에 의문을 표시했다. 이러한 치안 불안에다 실업난, 장기적인 경기침체가 범죄를 부추기지 않느냐는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임준택 교수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것으로 소문난 노약자들은 범죄의 타깃이 되기 쉽다"며 "고령화 사회로 들어서는 만큼 선진국처럼 노인치안 교육제도인 `시니어 프로그램'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양대 사회학과 심영희 교수는 "경기침체, 실업 등으로 갑자기 경제적인 궁핍에 내몰린 사람들이 타인을 향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며 "강남 등 부촌에 사는노인 대상 강력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것은 상대적 박탈감이 작용하는 데다 성공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강훈상기자 sisyphe@yonhapnews hskang@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