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반테스의 작품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풍차를 적으로 무모한 싸움을 벌인다. 2003년 가을 일본에도 돈키호테가 화제다. 24시간 문을 열어 놓는 가격파괴형 할인점 돈키호테는 '튀는' 장사 스타일로 소문난 업체다. 팽개치듯 물건을 쌓아놓는 상품진열 기법과 자금난에 몰린 회사들의 제품을 땡처리로 사들인 후 염가로 판매하는 장사법이 많은 화제를 몰고 다닌다. 이 돈키호테가 지난 8월부터 후생노동성과 샅바 싸움을 시작했다. 싸움의 원인은 텔레비전 전화를 이용한 약 판매.돈키호테는 약사가 퇴근하고 난 점포에 찾아 온 고객이 약을 원할 경우 다른 점포의 심야근무 약사와 텔레비전 전화로 상담,처방을 받도록 했다. 고객들은 갈채를 보냈다. 그런데 후생노동성이 제동을 걸었다. 약사가 있는 곳에서만 약을 팔도록 한 법 규정은 오·남용 사고를 막기 위한 것인데 돈키호테의 처사는 이에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물러서지 않았다. 텔레비전 전화로 상담한 후 매장 직원으로부터 약을 넘겨받는 것이나 약사와 얼굴을 대하고 사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반박했다. 돈을 받고 파는 것이 문제라면 공짜로 주겠다며 9월부터는 아예 무상으로 제공 중이다. 돈키호테의 도전은 일본 사회와 언론의 비상한 관심 대상이 됐다. 돈키호테의 용기를 칭찬하는 목소리도 줄을 이었다. 독설가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는 "무엇이 잘못 됐느냐" "권장할 일을 갖고 시비를 건다"며 후생노동성을 공개 비난했다. 궁지에 몰린 후생노동성은 텔레비전 전화 판매의 적법 여부를 검토할 전문가 회의를 10월 말 소집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회의 결과에 따라 판매를 인정할 수 있다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일본 언론은 후생노동성의 처사가 국민들의 실익을 도외시한 관료들의 철밥통 및 이익집단의 기득권 고수와 무관치 않다며 돈키호테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텔레비전 전화 판매가 늘어날수록 약사들의 일거리가 줄고 규제의 칼이 무뎌질 것을 우려한 다리 걸기라는 비판이다. 닛케이 비즈니스는 돈키호테 문제를 다뤘던 후생노동성 주무국 공무원의 3명 중 1명이 약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고 공개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