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인사들이 미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의 신분을 의도적으로 공개했다는 의혹과 관련, 미 법무부가 진상조사에 착수해 미 정가에 파문이 일고 있다. 특히 CIA 요원 신분 노출 사건은 백악관이 조지 부시 대통령을 공격했던 전직외교관에게 보복을 가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주장과 맞물려 논란이 증폭되고있다. 내년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과 경쟁하게 될 민주당 후보들은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된 상황에서 터진 이번 일을 계기로 부시 대통령에 대한 정치공세를 강화할 태세다. ◇사건개요 = 부시 대통령은 올해 초 국정연설을 통해 영국이 제공한 정보를 근거로 `이라크가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우라늄 구입을 시도했다'는 주장을 했으나 이를 반박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조지프 윌슨 전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이다. 그는 지난해 니제르에 파견돼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영국의 정보가 근거없다는 결론을 내린 뒤 이를 보고했지만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의 우라늄 구입 시도 정보를 `영국의 정보에 따르면'이라는 말을 붙여 국정연설에 포함시켰다. 이른바 `16단어'로 알려진 이라크의 우라늄 구입시도 정보는 이라크전쟁이 끝난뒤 근거없는 것으로 판명됐지만 개전 명분이 됐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대한 베일이 벗겨지면서 백악관과 윌슨 전 대사간의 관계는 굉장히 껄끄러운 상태가 됐다. 그러던 차에 백악관측이 윌슨 전 대사에게 보복하기 위해 CIA 비밀요원으로 활동하던 그의 부인 발레리 플레임의 신분정보를 누설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신분공개 시점 = 미 언론들은 CIA 비밀요원인 윌슨의 부인에 관한 신분이 언론을 통해 노출된 것은 윌슨이 부시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반격한 직후 이뤄졌다고보도하고 있다. 윌슨 전 대사는 지난 7월 발표한 글에서 "우리는 정보수집에 수십억 달러를 쓰지만 결국 무엇인가가 국정연설에 포함되고 만다"면서 부시 대통령을 비판했다. 그 글이 나온 다음주 극우 칼럼니스트인 로버트 노박은 한 칼럼을 통해 2명의 고위급행정부 관리의 말을 따 윌슨의 부인이 대량파괴무기 정보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CIA비밀요원이라고 폭로한 것이다. 노박은 이 칼럼에서 "행정부의 고위 관계자 두 명이 윌슨의 부인이 그를 조사차 니제르에 보낼 것을 제안했다고 나에게 말해 줬다"고 쓰기도 했다. ◇흘린 사람은 누구 = 백악관측은 노박에게 이 사실을 누설한 소식통이 백악관인사들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으나 윌슨은 다른 기자들로부터 백악관 인사가 플레임의 신분을 누설했다고 알려줬다며 `범인'으로 백악관을 지목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을 곤경에 빠뜨린 자신에게 보복을 가하기 위해 백악관측이 비밀요원의 신분누설을 금지한 국가요원신분법과 비밀정보 무단 누설법 등 두 가지 법을어겨가면서까지 노박에게 자신의 아내에 관한 정보를 흘렸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는 익명의 미 행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2명의 백악관고위 보좌관이 최소한 언론인 6명에게 전화를 걸어 윌슨 부인에 관한 정보를 누설했다며 이는 외교관으로 일해온 윌슨의 신뢰도에 타격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포스트는 특히 윌슨이 지난 8월21일 부시 대통령의 고위 보좌관인 칼 로브가 정보를 누설했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고 덧붙였다. ◇조사 착수 = 법률에 의해 철저히 금지된 비밀요원의 신분을 노출시킨 당사자로 지목된 백악관측은 이번 파문이 이라크 전후문제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부시 대통령을 한층 더 곤경으로 몰아 넣을 것으로 우려하는 모습이다. 백악관은 일단 백악관 인사들이 비밀을 누설했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부인하면서도 파문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법무당국이 진상조사에 착수토록 하는 등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칼 로브가 정보를 누설했음을 시사한 윌슨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고 터무니 없는 것"이라고 일축한 뒤 법무부가 백악관 인사들의 정보 누설 의혹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라이스 보좌관은 이날 폭스TV와의 회견에서 "통상적으로 이같은 문제는 적절한 조치를 위해 법무부에 회부된다"고 설명했다. 법무부의 진상조사 착수는 CIA 비밀요원인 윌슨 부인의 신분을 백악관이 누설했다면서 CIA가 조사해 줄 것을 정식 요청해 이뤄진 것이라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대선 쟁점으로 부각 = 이번 의혹은 미 민주당 후보들이 의회 차원의 진상 조사를 요구하고 나서는 등 향후 미 대선 과정에서 쟁점으로 부각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후보인 리처드 게파트 하원 의원(미주리)은 NBC-TV의 `언론과의 만남'프로그램에 출연해 "법률을 어겼다면 해당자를 당연히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의회의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또 다른 민주당 후보인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는 아이오와주 유세에서 이번 사건을 `심각한 문제'라고 규정한 뒤 부시 대통령은 이 사건에 관계된 백악관 인사들의 명단을 즉각 공개하라고 압박했다. 딘 전 주지사는 아울러 별도의 성명을 통해 존 애슈크로프트 법무장관은 진상조사 과정에서 어떠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 뒤 공정한 조사를 촉구했다. (워싱턴 AP =연합뉴스) parks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