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간 30조원을 쏟아부어 만든 "한국과학기술의 메카" 대덕밸리가 위기를 맞고 있다. 대덕밸리 위기론은 훨씬 이전에 불거졌다. 지난 95년 연구원들이 인건비의 절반 이상을 스스로 벌어야 하는 연구과제 중심제도가 도입된데다 IMF(국제통화기금)사태 이후 과학기술자들이 대량 해고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대덕밸리 간판 벤처들이 잇달아 떠나고 자금난과 마케팅 부재로 폐업하는 곳도 줄을 잇고 있다. 대덕밸리 관계자들은 "지금같은 상황이라면 17개 정부출연 연구기관과 80여개 민간연구소,연구인력 1만5천여명이 활동중인 국내 최대 과학기술인프라가 붕괴될 수 밖에 없다"며 "대덕밸리 전반을 재검토해 정부 차원의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덕밸리 엑소더스='탈(脫)대덕밸리' 현상은 송도IT밸리 계획과 맞물리며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지난 2001년 말 입주업체 5백3개를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서 올 5월 말 현재 3백96개로 줄었다. 간판 벤처들의 이탈은 더욱 큰 문제다. 이들은 업력 4∼5년차로 성숙단계에 접어들어 본격적인 매출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대덕밸리의 손실로 이어진다. 광통신 전문기업인 텔리언을 비롯 기가시스네트 디지탈아리아 스프레드텔레콤 후후 베리텍 등 내로라 하는 지역 벤처기업들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둥지를 옮겼다. 대덕밸리벤처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본사를 수도권으로 옮긴 기업도 40여개에 달한다. 대덕밸리 IT벤처기업의 간판격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창업보육센터 졸업기업들의 '대덕밸리 엑소더스'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 2000년부터 현재까지 졸업한 70여개의 벤처기업 중 20여개가 떠났다. ◆자금난,속출하는 부도=대덕밸리 벤처기업들은 대부분 지난 97∼98년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정책에 힘입어 정보통신진흥자금 대전시운영자금 기업운전자금 채권담보부증권(프라이머리 CBO) 등을 금융권에서 대출받았다. 벤처기업들은 개발기술 상용화에 대부분의 자금을 소진,마케팅 단계로까지 나가지 못했고 그에 따라 매출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대덕밸리 입주업체의 경우 적게는 4천8백만원에서 많게는 20억여원을 대출받았지만 현재로선 상환 대책이 없다. 그나마 형편이 좋은 A사는 지난해 7억여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당장 갚을 돈이 6억여원에 달한다. 반도체 부품장비업체인 B사 역시 올해 갚아야 할 자금이 4억여원에 달하지만 1억원의 매출도 올리지 못했다. 경영난에 따른 부도를 막지 못해 사옥을 경매하는 업체들도 늘고 있다. 지난 5월 대덕밸리협동화단지 내에 사옥을 마련한 G사는 입주 두 달도 안 돼 지난달 경매에 들어갔다. 지난해 말 부도난 H사도 지난 4월 경매절차에 들어갔고 K사도 자금난을 견디다 못해 사옥 매각절차를 밟고 있다. 그동안 벤처기업 입실 경쟁이 치열했던 ETRI 보육실의 경우 지난달 일부 벤처 졸업으로 28개 중 3개가 비었으나 아직도 채워지지 않고 있다. 목원대도 16실 중 5개가 주인을 못 찾았고 동아벤처빌딩도 최근 빈 공간이 하나 둘 늘어 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덕밸리 한 간판벤처 대표는 "기술을 막 상용화해 매출을 올릴 단계에서 자금난에 부딪쳐 안타깝다"며 "관련 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줄부도'와 그에 따른 대덕밸리 기반 붕괴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전=백창현 기자 chbai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