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투신 자살은 현대 정씨 일가가 그동안 겪어온 심한 부침과 파란의 또다른 국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 산업의 발전을 주도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재계와 산업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정씨 일가이지만 잇따른 `비운'과 경영난은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을 되새기게 하고 있다.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이번에 투신 자살하면서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아들 가운데 사고로 숨지거나 자살한 사람은 모두 3명에 이른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첫째 아들이었던 정몽필 당시 인천제철 회장은 지난 82년 교통사고로 타계했고 넷째 아들인 몽우씨는 지난 90년 자살했으며 이번에 다섯째 아들인 몽헌씨가 그 뒤를 이었다. 아울러 정주명 명예회장에 이어 정몽준 의원이 대를 이어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지만 두번 모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하는 파란을 겪기도 했다. 특히 정몽헌 회장과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엇갈린 운명은 현대그룹 분열의 시발점이 됐던 지난 2000년 '왕자의 난'에서 비롯됐다. 당시 현대건설과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등현대그룹의 주요 계열사를 이끌던 정몽헌 회장은 현대그룹의 후계자 지위를 사실상확보한 것 아니냐는 추측마저 낳게 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정몽구 회장의 강력한 반발과 계열사에 대한 취약한 지분구조로 인해 현대.기아차그룹의 경영권 확보에 실패하고 말았다. 정몽헌 회장은 사실상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고 현대중공업과 현대전자 등이 잇따라 현대그룹에서 분리되면서 그룹은 현대건설과 상선, 현대아산 등으로축소되는 길을 걸었다. 정몽헌 회장은 이후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으로 대북사업에만 전념했으나 이마저도 금강산 관광사업의 부진, 북한 핵문제로 인한 남북 냉각기류 그리고 대북송금 특검수사 등으로 인해 뜻대로 풀리지 않는 불운을 겪었다. 6남인 몽준씨도 파란만장한 부침을 겪은 인물로 꼽힌다. 그룹에서 분리된 현대중공업의 대주주로 있으며 2002년 월드컵 유치와 성공적인개최로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었다. 지난해 대선때는 후보로 출마한 뒤 노무현 후보와의 극적인 후보 단일화 성공으로 찬사를 한몸에 받았으나 대선 막판에 후보 단일화를 철회, 찬사가 일순간 비난으로 바뀌고 말았다. 한때 재계 서열 10위권까지 넘보다 97년 해체된 한라그룹에서도 정씨 일가의 부침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창업주인 정인영 전 명예회장의 차남인 몽원씨가 지난 94년 후계자로 지명돼 그룹을 이끌어 왔으나 97년 12월 한라중공업 부도와 함께 다른 계열사들도 청산, 화의등에 처해져 현재는 한라건설만이 명맥을 잇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우량 계열사를 통한 한라중공업 지원문제로 구속기소돼 같은해10월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가 보석으로 풀려나 현재 항소중이다. 더구나 후계자 경쟁에서 밀려난 장남 몽국씨가 자신 소유의 한라시멘트 주식을임의로 처분했다며 몽원씨를 사문서 위조 및 행사 혐의로 고소해 재산을 둘러싼 형제간 갈등마저 벌어지고 있다. 정순영 명예회장이 세운 성우그룹은 네 아들이 계열사들을 각각 물려받았으나일부 계열사가 부실화의 길을 걸었다. 반면 정씨 일가의 일부 인물은 기업경영과 후계구도 등이 순조롭게 진행되며 재계를 주도하고 있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은 `왕자의 난' 이후 현대.기아차그룹의 경영권을확고히 하고 그룹을 재계 서열 4위에 올려놓으며 순조로운 길을 걷고 있다. 경영 수완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아들 의선씨를 현대차 부사장으로, 작고한 동생몽우씨의 장남인 일선씨를 계열사인 BNG스틸 부사장으로 승진시켜 후계구도마저 착실히 다져나가고 있다. 이밖에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아들인 몽규씨는 현재 이 회사 회장을맡고 있으며 고 정주영 회장의 3남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은 올해 장남 지선씨를부회장으로 승진시켜 3세 경영의 수순을 밟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안승섭기자 ssahn@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