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콘크리트 바닥에 노란 빛깔의 꽃가루가 수북이 쌓여 있다. 꽃가루가 발하는 광채도 신비롭지만 관람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명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갖고 있는 독일 작가 볼프강 라이프의 대표작 '꽃가루' 설치작품이다. 꽃가루 작업은 1977년 처음 선보여 세계 미술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성장과 변화의 순환과 반복이라는 도(道)의 본질적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평을 얻고 있다. 작가는 집 주위 숲과 초원에서 민들레 등의 꽃가루를 직접 채취한다고 한다. 대리석 위에 우유를 붓고 비우는 행위를 반복하는 '우유 돌'은 신과의 소통을 기원하는 일종의 제식이다. 사각의 대리석 표면을 살짝 판 다음 우유를 부어 놓은 것이다. 대리석과 우유의 만남을 통해 따듯함과 차가움, 비어 있음과 채워짐의 대립적 가치들이 완벽하게 결합하는 동양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라이프는 '카셀 도큐멘타' '베니스 비엔날레' 참가를 계기로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끌었다. 2000년부터 올해 1월까지 워싱턴 허션미술관, 댈러스미술관, 뮌헨 하우스데어쿤스트 등지에서 회고전 성격의 순회전을 갖기도 했다. 그의 작품세계는 동양 사유철학을 반영한다. 1960년대부터 인도 터키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자연과학 너머의 세계, 즉 영적 초월적 세계에 관심을 가졌다. 그가 재료로 사용하는 꽃가루 우유 돌 밀랍은 자연의 순환과 관련이 있다. 서구에서 무시돼 온 단순성의 본질, 초시간성, 초월성을 지향하는게 그의 작품의 핵심이다. 이번 '통로-이행'전에는 독일국제교류처(IFA)의 주요 소장품 7점에 한국 전시를 위해 46점이 새로 추가돼 총 53점의 작품들이 전시 중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의 조각 설치 사진 드로잉이 망라돼 있다. 9월12일까지. (02)2188-6000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