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의 잇단 파업사태가 진정국면에 접어들자 이제는 노조의 경영참여 문제가 새로운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얼마 전 정부 일각에서 노조가 과도한 임금인상을 자제하는 대신 반대급부로 상당 수준의 경영참여를 보장하는 '네덜란드식 조합주의'를 향후 노사관계의 모델로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네덜란드식 모델은 이론적으로는 대화와 타협을 원칙으로 하는 이상적인 제도여서 평소 대립적인 노사관계에 골머리를 앓아온 우리정부의 눈과 귀를 쏠리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파업사태에서 보듯 자신들의 이익만을 주장하며 대화와 타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전투적인 성향의 노조를 생각하면 우리상황에 네덜란드 모델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기업활동을 하며 우리의 노사문화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 회장단이 "노사간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한 네덜란드 모델은 실효성을 거두기 힘들며 한국 실정에는 맞지 않다"고 충고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같은 제3자의 충고가 아니더라도 산적해 있는 노사현안을 해결하기에도 벅찬 우리실정에서 노조의 경영참가라는 너무나 민감한 문제를 왜 지금 논의해야 하는지,학계나 전문가의 논의차원이 아닌 정부가 앞장서 공식적으로 거론한 목적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금융산업노조가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경영참가협약 등 정치적 요구를 내걸고 있으며,일부 기업에서는 노조가 해외투자 유치와 같은 경영전략적인 사항에까지 자신의 동의를 요구하고 있는 시점에서 충분한 검토없는 정책발상은 도무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다. 우리 노동법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친노동자적 법률로 알려져 있으나 그래도 노조의 경영참가와 같은 경영·인사권 만큼은 노동쟁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책당국자는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논의가 더욱 한가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노조 경영참가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국내산업이 급속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일정수의 종업원대표가 회사경영에 참여하는 공동의사결정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 경직된 노동시장과 과다한 임금으로 기업의 해외이전이 가속화돼 해외생산비율이 30%를 넘어선지 오래다. 이에 따라 공동의사결정을 통한 노사관계 모델은 독일에서조차 그 존재가치를 의심받기에 이르렀다. 하물며 정책구상 수준의 '노조 경영참가' 발언에도 외국기업이 동요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이 제도가 더욱 구체화된다면 외국기업들이 대거 국내에서 철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내기업들 역시 해외로 탈출해 산업공동화 현상을 초래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노동조합도 경영참가가 자신들에 결코 유리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제도 도입으로 국내외 투자자들이 한국을 기피하게 된다면 결국 국내 실업이 증가하고 임금수준이 하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조의 경영참가가 독일의 자본집약도를 높여 노동을 자본으로 과도하게 대체시켰다는 연구결과에 노조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도 이미 노사관계 발전수준에 맞는 나름대로의 노사협력문화를 가지고 있다. 노사협의회,종업원지주제,경영설명회 등 넓은 의미에서의 근로자 참가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른 나라의 이상적인 모델을 추구하기 보다는 이미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이같은 현실적인 근로자참가제도를 발전시킬 방안을 찾는 게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향후 무엇으로 먹고 살지,2만달러 달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심해야 할 때다. 이런 시기일수록 경제에 충격을 주는 정책과 제도를 성급하게 도입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더구나 노조의 경영참가와 같이 노사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제도를 도입할 때는 주어진 상황과 사회적 토양 등 다양한 요소를 검토하고,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칠 필요가 있다. 거의 유명무실해진 노사정위원회에서 보듯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제도는 공허한 이상주의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지 않은가? 기업이나 경제는 결코 정책의 실험대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