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각 옆 길거리에 판을 벌였다. 붕어빵을 구웠다. 열흘이 지나도록 허탕만 쳤다. 살을 에는 겨울날씨 탓에 동상까지 얻었다. 좌절감이 엄습해 왔다. 지금은 '음식재벌'이란 말을 듣는 배대열 퍼시픽씨푸드 사장(45)의 대학시절 얘기다. 28살 늦깎이로 대학에 들어간 배대열은 스스로 학비를 조달해야 했다. 붕어빵 노점상은 그의 첫 사업이었다. "열하루째 되던 날 '혁신'을 감행했습니다. 앙꼬(팥소)를 넣는 티스푼을 큰 군용 스푼으로 바꾸고 팥을 4∼5배나 더 넣었어요. 손님이 늘어나기 시작하더군요." 손님들이 1백원짜리 1개를 사서 한입 베어 물다가 다시 돌아와 10개씩 사갔다. 푸짐한 앙꼬 덕이었다. 친구들까지 데리고 왔다. 빵 굽는 기계를 2줄짜리에서 4줄짜리로 바꿨다. 그래도 손님이 줄을 섰다. 끼니를 걸러야 할 정도였다. 그의 사업철학인 '거름과 혁신론'은 여기서 나왔다. "손님은 논밭, 음식은 거름과 같습니다. 논밭에 거름을 듬뿍 주면 풍성한 수확을 가져다줍니다. 먹는 장사도 같은 이치지요." 1995년 '별난 버섯집'이라는 이름으로 버섯매운탕 전문점을 차릴 때도 주변에선 "미쳤다"며 펄쩍 뛰었다. 경기 하남시 감북동 외딴 변두리에 식당을 내려고 했기 때문. "저는 자신 있었습니다. 꽃은 산중에 피어도 꿀을 먹으려고 벌이 스스로 찾아오지 않습니까. 맛있으면 오게 돼 있습니다. 그게 식당입니다." '별난 버섯집'은 대히트였다. 석 달이 채 못돼 하남시 일대 최고의 명소로 등장한 것. 가맹점만도 전국에 1백50개가 삽시간에 깔렸다. 8년이 지난 지금 그는 이 일대에 직영점 5개를 갖고 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