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이후 1백일 동안 노무현 정부가 수행한 국정에 대한 언론의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인수위원회 활동부터 치면 5개월이 넘었건만,아직도 국정방향과 그 실천방안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북 및 대미관계 교육행정정보화 물류대란 등에서 나타난 것처럼,정책의 비일관성으로 인해 사회 혼란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50%대라는 여론조사 결과는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할 즈음 한 원로 행정학자는 '우리 정치사의 한단계가 끝나고 새로운 단계가 시작'하고 있는 것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5·16군사쿠데타에 의해 시작된 권위주의와,그에 대항했던 '양김(兩金)'시대가 이제 모두 끝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우리는 노무현 정부를 통해 국정의 새로운 방향과 새로운 운영방식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맞은 셈이다. 그러나 출범 이후 지난 1백일 간에 전개된 실상을 보면,한 시대를 마감하고 다른 한 시대로 이행하는 일이 그리 간단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첫째,출범 이후 노무현 정부는 과거와는 다른 국정과제와 목표들을 제시하고 있다.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지난 수십년간의 압축성장 과정에서 비롯된 여러 형태의 사회적 불균형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국정목표는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는 것이며,시대적으로도 바람직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사회적 갈등이 수반되는 목표이기도 하다. 어떤 형태의 불균형이든 그것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기득권층의 반발이 불가피하게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본질적으로 갈등이 내재된 이 같은 국정목표들을 추진하는 데 있어 노무현정부는 국민 참여와 상향식 의사결정에 의존하겠다는 원칙을 표방하고 있다. 균형발전이라는 국정목표와 더불어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식에 의해 국정을 수행하겠다는 원칙도 우리가 오랫동안 갈망해온 보편적 가치에 부합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국정운영방식에 의해 (그것도 본질적으로 갈등이 내재된) 정책을 추진하기에는 인적 면에서나 제도적 면에서 거의 준비가 안돼 있다는 점이다. 정부 내부의 예를 들면 과거 '내부 내각'으로 행세했던 청와대 비서실의 문제를 해소하려는 의도에서 정책영역별 수석비서관 제도를 없애고,국정원이 주도하던 '관계기관대책회의'도 더 이상 운영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막상 이 정부의 장관들은 여전히 청와대의 기류를 탐색하느라 바쁘고,현안이 발생하는 경우 책임을 전가하기 일쑤다. 또 과거와 같은 하향식 정책조정을 지양한다는 원칙에도 불구하고,여러 정책영역에 걸치는 사안을 관련 공무원들이 실무수준에서 자발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횡적 조정메커니즘이 개발되기에는 부처할거주의의 벽이 여전히 높다. 새로운 국정운영방식이 정착되지 않은 데서 발생하는 문제는 정부 밖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자신들이 지지했던 노무현 후보의 집권 자체가 이제 이 나라에서 극단적인 권위주의가 해체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임에도,일부 사회집단들은 자신들의 이익이나 명분을 관철하기 위해 비(非)제도적인 '운동'에 의한 '투쟁'을 전개하기 일쑤다. 한가지 원인은 이해와 가치를 달리하는 사람들 간의 합의 도출을 돕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정책공동체가 아직 제도화되어 있지 않은 데 있다. 그러나 사회단체들이 지금처럼 운동과 투쟁의 자세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한 그와 같은 참여와 공론의 장(場)이 정착되기란 매우 어렵다. 이처럼 새로운 국정운영의 방식이 실현되기엔 아직 인적 제도적 준비가 부족한 상태지만,그렇다고 해서 과거 방식으로의 회귀가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결국 새로운 방식에 대한 공직자와 사회단체들 모두의 적극적인 이해와 협조 그리고 정책 오류를 방지하려는 진지한 노력에 의해서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가 할 일은 공직자들에 대한 과감한 권한 위임을 통해 중도에 개입하는 일을 삼가되,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엄격히 묻는 일이다. 사회단체들의 참여는 최대한 활성화하되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사회단체들의 집단행동은 엄정하게 다루는 것 또한 민주적인 국정운영의 정착에 지름길이 될 것이다. ydjung@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