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후 지금까지는 시스템 구축 기간이었다"는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의 엊그제 발언을 깜짝 놀라며 듣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도 '새로운 관행과 문화가 정착되는 과도기'로 참여정부 1백일을 정의했지만 역시 무언가의 오류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시스템의 구축이 아니라 시스템의 붕괴가 지난 1백일의 족적이며 바로 그것 때문에 국정에 대한 위기감이 번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참여정부 고위인사들이 시스템이라는 말을 유독 즐겨쓰는 것부터가 반어적으로 때로는 역설적으로까지 들리는 상황이다. 실제로 화물연대나 철도청 파업을 처리하는 과정 그 어디서도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무시되고 부인되었다. 노동 장관이나 환경 장관이 앞장서 '법과 행정절차에 의한 의사결정 시스템'을 부인했고 현안마다 청와대가 직접 개입하면서 국가 시스템의 위기가 깊어졌다. 평검사와의 토론은 사법시스템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계급 질서를,그리고 최근 청와대에서 있었던 조흥은행 매각 토론회는 공자위와 재경부 등 국가 공적기구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모두 망가뜨렸다. '검찰이 준법투쟁을 하고 있다'는 시중의 농담은 시스템 마비상황을 잘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궁극적으로는 참여정부라는 용어부터가 제도로서의 정치 시스템을 흔들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않다. 국민 대중의 직접적인 정치참여를 독려하게 되면 국회와 정당,그리고 행정 구조물(시스템)은 형해화할 수밖에 없다. 참여의 주체가 네티즌이 되었건 386이 되었건 지역주민이 되었건 특정 계급적 외피를 갖는 그룹이라면 더욱 그렇다. 결국 국가 의사결정이 동네 반상회처럼 특정 집단과 대통령의 직접 대화라는 1차원으로 환원되고 만다. 참여정부 1백일 동안 정치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아볼 수 없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사소한 사회갈등까지 일일이 직접 청와대로 끌고가는 전근대적 의사결정과정만 바빠지고 있다. 물론 대통령이 분주한 것과 나라가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시스템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문제의 인식에서부터 해결까지의 '제도화된 과정'이다. 경제 분야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경제적 이해갈등을 조절하는 가장 정밀한 시스템은 '정부나 집단'이 아니라 '개인과 시장'이다. 시장이야말로 인간이 발명한 것 중에 가장 정밀하게 작동하는 자동조절 시스템이라는 것은 다른 허다한 이념 시스템이 실패로 돌아간 20세기 역사가 증명하는 그대로다. 여기에 정부 또는 특정 세력이 직접 끼어들게 되면 시장은 죽고만다. 이 원칙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그 모든 개혁 슬로건은 사이비 구호,예를 들어 기업에 대한 혐오감이나 기업가에 대한 적대적 계급의식의 은폐된 표현일 뿐이다. 시장개혁을 추구한다는 일부 시민단체들이 놀랍게도 정치운동 내지는 대중동원 방식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파의 무기로 좌파적 목표를 추구할 때,다시 말해 기업 투명성이라는 이름을 빌려 기업 경영권과 소유권을 무력화하기로 덤벼들 때 시장경제 시스템은 종언을 맞는다. 개혁의 깃발을 높이 들수록 시장은 활기를 잃게 되고 개혁의 주체와 객체가 모두 때이른 피로증만 쌓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시장 시스템에 대한 확고한 신뢰,다시 말해 집단 행위는 반시장적이라는 원칙을 인정하는 바탕에서라야 나라 경제가 회생할 수 있다. 대통령이 직접 토론에 나서야 하고고장관들이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열을 올리면서 "이것이 우리의 시스템"이라고 말한다면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