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단기부양책에 연연하지 말고 감세 신용개혁 등 장기 구조개혁을 추진해야 합니다." 미국 부시 행정부의 핵심 경제브레인으로 통하는 글렌 허바드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한국의 경기침체 해법과 관련, 이같이 조언했다. 허바드 교수는 27일 스탠더드차터드은행이 '한국을 금융중심지로'를 주제로 개최한 국제컨퍼런스 참석차 방한해 최경환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과 대담을 가졌다. ----------------------------------------------------------------- △ 최 위원 =한국경제가 심상치 않다. 체감경기가 최악이다. 해법이 있다면. △ 허바드 교수 =경기진작을 위해 취할 수 있는 방안은 두 가지다. 먼저 추경예산 편성을 통해 경기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세율인하로 장기성장을 꾀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선 경기가 침체되면 우선 단기 부양책을 사용한다. 하지만 단기 부양책의 효과는 의외로 크지 않다. 감세와 구조개혁을 강력히 추진할 것을 조언한다. 미국에선 올 하반기부터 감세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 아울러 장기 구조개혁에는 가계신용을 강화하는 방법이 포함돼야 한다. 최근 한국에서 카드부실 문제가 대두된 것으로 알고 있다. 신용위기를 해소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긴요한 일이다. △ 최 위원 =그러나 한국정부는 가계부실, 정책불확실성에 따른 투자위축 등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 없이 단기부양책에 급급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부양효과는 없이 부동산 버블만 부추긴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허바드 교수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GDP 수준을 감안할 경우 한국의 가계부채는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미국에선 주로 물품을 구매할 때 신용카드를 사용하지만 한국에선 현금서비스를 받는데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보다 심각하다. △ 최 위원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 허바드 교수 =모기지(장기주택담보)시장 활성화가 한 방법이다. 미국에선 부동산 거품이 꺼진 후 장기주택담보대출을 적극 유도해 신용대란을 막을 수 있었다. 또 다른 방법은 외국계 금융회사의 진출을 확대하는 것이다. 신용카드 부문에서 선진 금융기법을 갖고 있는 외국 금융회사에 문호를 대폭 열어줄 필요가 있다. △ 최 위원 =한국을 금융중심지로 만들기 위한 논의가 한창이다. 가능하다고 보는지. △ 허바드 교수 =충분히 가능한 주제다. 하지만 문제는 말보다 실천의지다. 금융중심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네 가지가 중요하다. 경쟁촉진적 기업환경, 사적 재산권 존중, 투명한 기업지배구조, 안정적 거시경제 정책이 그것이다. 정부는 이런 환경을 만들기 위한 일정표를 만들고 한 가지씩 풀어나가야 한다. △ 최 위원 =금융중심지보다는 물류중심지를 추구하는게 더 현실적이란 지적도 있는데. △ 허바드 교수 =한국의 발전단계상 이제는 금융부문을 집중 육성할 때가 됐다.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금융부문이 필수적이다. 물론 물류부문의 발전을 배제해선 안된다.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최 위원 =동북아 금융중심지를 만들기 위해 규제완화를 추진하려 하고 있으나 노동계와 환경단체들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중심지가 가능하겠는가. △ 허바드 교수 =대통령을 만나 보니 이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돌파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울러 한국정부는 누가 봐도 무엇은 되고 무엇은 안되는지 규제의 틀을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서구에선 해선 안되는 일부를 빼곤 모두 허용하고 있다. 동북아 금융중심지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보다 자유주의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 최 위원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경제정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 했던 것이 사실이다. 취임 3개월이 된 현 시점에서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평가한다면. △ 허바드 교수 =열정이 많은 대통령이다. 특히 한미공조 문제와 관련한 불안감을 씻어낸 것이 중요하다. 미국은 한국과의 파트너십을 가장 중시한다. 한국과 미국은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관계도 긴밀하다. 돈독한 한미동맹 관계는 노 대통령의 방미 공동성명에도 잘 반영돼 있다. △ 최 위원 =한국 내에서는 친노동계적 정책으로 노사갈등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는 비판도 많다. 한국의 노동운동을 어떻게 보나. △ 허바드 교수 =노동자들은 구조개혁에 대해 많은 오해를 갖고 있다. 지난 83년 거대 통신기업인 벨시스템의 독점이 무너졌을 때 노동단체에선 대량 실업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독점기업이 해체되고 더 많은 신생 기업이 생겨났으며 통신시장이 큰 호황을 맞았다. 개혁이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커다란 혜택을 가져다줬다. ----------------------------------------------------------------- [ 허바드 교수 누구인가 ] 허바드 교수는 부시 행정부 출범 후 지난 3월까지 미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지난 91년부터 3년간 미 재무부에서 조세개혁을 진두지휘하는 등 미국 경제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정부의 숨은 '실력자'다. 지난 83년 하버드대에서 조세 재정경제 국제금융 기업금융에 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노스웨스턴 하버드 시카고 컬럼비아대 등에서 강의했다. 90여편의 경제 및 금융 관련 논문을 저술했다. 200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경제정책협의회 의장직을 맡기도 했다. 정리=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