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21일(이하 현지시간) 미국이 디플레에 빠져들 확률이 현재로선 희박하나 그렇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디플레 예방을 위해 필요할 경우 가능한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스펀 의장은 이날 열린 미 상하원 합동경제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이렇게 말하면서 필요할 경우 금리 인하 외에 FRB가 장기국채를 직접 매입해 장기금리 인하를 유도하는 등 "대처할 수 있는 실탄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미 경제 전망에 대해 그린스펀 의장은 청신호와 어두운 지표들이 "강하게 엇갈리고 있기" 때문에 속단이 어렵다면서 그러나 올 하반기에 회복세가 가시화될 것으로"믿지 않을 이유도 없다"고 신중하게 내다봤다. 월가 인사들은 그린스펀의 발언에 대해 내달 24-25일 소집되는 FRB 산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가 내려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이제 관심은 인하폭이 통상적 수준인 0.25%포인트에 그칠지 아니면 0.5%포인트로 확대될 것인지로 쏠리고 있다고 말했다. FRB는 지난해 11월 6일 연방기금 금리를 0.5%포인트 내려 지난 41년 사이 가장 낮은 1.25%로 유지해왔다. 그린스펀 의장은 "미국에 대한 디플레 위험이 임박한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디플레 타격이 인플레에 비해 워낙 심각하기 때문에 "예의주시해야 하며 만약에 필요하다면 FRB가 (즉각) 조치를 취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디플레 충격이 올 경우 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낮추라는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면서 "설사 이렇게 되더라도 FRB가 속수무책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린스펀 의장은 FRB가 `금리카드' 외에 이례적으로 장기국채를 직접 대거 매입함으로써 장기금리 인하를 유도하는 방법 등 "쓸 수 있는 실탄이 얼마든지 있다"고 덧붙였다. FRB는 통상적으로 시중은행을 통해 단기국채를 보유하는 방식을 써왔다. 그린스펀 의장은 미국이 "필요하면 달러를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이전의 금본위 제도가 와해된 후 디플레 위기를 느낄 필요가 없었던 셈"이라면서 그러나 "일본 사태가 부각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10년여째 디플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FOMC는 지난 6일 정례회동을 끝낸 후 공개한 성명에 `인플레보다 디플레를 더 우려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포함시킨 바 있다. FRB가 디플레에 대한 우려를 이처럼 공식적으로 표명하기는 지난 50여년 사이 처음이다. 미국의 향후 경제에 대해 그린스펀 의장은 청신호와 어두운 지표들이 "계속 강하게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따라서 "현재로선 확언하기가 어렵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그러나 "올하반기에 회복세가 가시화될 것으로 믿지못할 이유도 없다"고 조심스런 낙관론을 덧붙였다. 그린스펀 의장은 노동시장이 여전히 경색돼있고 산업생산도 위축 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생산성이 향상되고 있으며 금융시장도 안정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지적했다. 또 에너지 가격이 일부 등락이 있기는 하나 이라크 종전에 따라 전반적인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미 경제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린스펀 의장은 이어 사스(SARS: 급성중증호흡기증후군)가 "세계 경제에 새로운 불확실 변수로 등장했다"면서 그러나 "미 경제에 대한 타격이 아직은 미미하다"고 말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jks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