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 본사 독점전재 ] 최근 선진국의 인플레이션은 50여년만의 최저수준이다. 이는 인플레와 싸워온 각국 중앙은행의 승리라고 할수도 있지만,경제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일본에 이어 미국과 독일은 지난 1930년대 이후 가장 심각한 디플레이션위기에 직면해 있다. 디플레에 일단 빠져들면 그 피해가 인플레보다 훨씬 심각하며 극복하기도 힘들다. 그런데도 오늘날 각국 중앙은행들은 디플레와 일전을 치를 태세가 돼 있지 않다. 유럽중앙은행(ECB)이 특히 그러하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ECB는 최근 디플레의 위험을 인식한 듯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지만,정말로 심각한 위기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 같다. 두 중앙은행이 안고 있는 최대 문제는 명목금리를 마이너스가 되게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가격이 하락했을 때 수요진작을 위한 금리정책을 동원할 수 없다는 얘기다. 미국의 금리(1.25%)는 이미 제로(0)수준에 근접해 있기 때문에 유럽(2.5%)보다 훨씬 심각한 디플레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FRB는 통화정책 완화를 통해 달러가치 하락을 용인하고 있으며 필요하다면 비정통적인 재정수단도 동원할 태세다. 반면 유로화 가치상승에 직면한 ECB는 필요한 금리인하 조치를 외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약한 달러는 유럽에 디플레를 수출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인플레 목표치를 필요 이상으로 낮게 잡음으로써 디플레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의 인플레율이 적정한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인플레가 전혀 없는 것보다는 다소 있는 것이 성장에 이롭다는 연구결과가 많이 나와 있다. 첫번째 디플레의 위험이다. 지난 40년간의 경제위기를 검토한 국제통화기금(IMF)은 인플레 목표치가 2% 이하였을 때 디플레의 위험이 극대화됐다고 분석했다. 인플레 목표치가 최소 2% 이상은 돼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런데 ECB는 2%를 상한선으로 잡고 있다. 유로존의 적정 인플레율은 미국보다 높아야 한다. 유럽 각국의 인플레율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단일통화의 도입으로 각국의 인플레율은 한군데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스페인 아일랜드 등 고성장 저비용 국가의 인플레율은 높고 독일 같은 저성장 고비용 국가는 낮게 마련이다. 따라서 유로존의 인플레 목표치가 2% 이하인 경우 독일은 1% 이하의 인플레율을 감내해야 한다. 공식 경제통계가 인플레율을 과장하는 경향을 감안하면 이는 사실상 디플레 상황이다. 일정 수준의 인플레가 바람직한 두번째 이유는 구조조정이 쉽다는 점이다. 3%선의 인플레 상황에서 노동자가 임금동결을 받아들이면 이는 3%의 임금삭감과 같다. 반면 인플레율 제로(0)에서는 3%의 명목임금 감소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인플레가 없다면 불황 상황에서 실질임금의 삭감이 어렵고 이에 따라 실업은 증가한다. 노동시장이 경직될수록 그 나라의 적정 인플레율은 높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ECB는 가장 낮은 인플레율을 고집하고 있다. 10여년 전 인플레가 만연할 당시에는 0~2%의 인플레율이 적정했다. 그러나 일본이 디플레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각국 중앙은행은 인플레율을 높게 잡을 필요가 있다. 정리=우종근 기자 rgbacon@hankyung.com ◇이 글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23일자)에 게재된 'The joy of inflation'이란 칼럼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