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모리시타 요이치 마쓰시타전기 회장) "정부가 재계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으니 시장이 꿈쩍도 하지 않는 겁니다."(우지이에 준이치 노무라홀딩스 회장)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재계 원로들로부터 따가운 소리를 '실컷' 들었다. 이마이 다카시 게이단렌 명예회장 등 재계인사 20여여명과 가진 저녁식사 자리에서였다. 주식관련 세금을 동결해 달라는 재계의 긴급제언을 퇴짜 놓은 직후의 만남이어서 그랬는지 핫이슈는 단연 주가 이야기였다. "나도 주가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고이즈미 총리가 궁색한 답변으로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지만 참석자들의 불만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마이 명예회장은 주식배당과 양도차익에 부과되는 세금을 동결해 달라는 요구는 재계의 위기감을 반영한 것이었다며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총리와 마주 앉은 자리에서 재계인사들이 대놓고 싫은 소리를 꺼낸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상대에게 공개적인 비판을 삼가는 것이 일본인들의 몸에 밴 대화 예절임을 감안하면 이날의 정부공격은 분명 이례적이다. 주가 이야기가 주된 화제가 됐지만,재계 인사들이 진짜 탓한 것은 경제를 보는 일본 정부의 시각이었다. 주가가 연일 고꾸라지고,천문학적 숫자의 주식평가손실에 만신창이가 된 기업과 은행들의 입에서는 '못 살겠다'는 비명이 끊이지 않는 데 정부는 강 건너 불 보듯 한다는 게 이들의 불만이었다. "경제는 계속 회복되고 있습니다.왜 세금동결 요구가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도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며 낙관론을 폈다. 하지만 만 2년의 재임 기간 1만4천엔을 넘나들던 닛케이평균 주가는 7천엔대로 처박혔다. 경제회복을 장담한 그의 공약과 달리 실업률 기업도산 등 민생과 직결된 지표는 최악의 기록을 거듭 경신 중이다. 재계 인사들은 정부의 위기의식 부족을 꼬집었지만 속마음은 총리의 위기불감증이 더 문제라고 말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