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로 취임 1백일을 맞은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이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에 노동자 출신인 좌파 노동자당의 룰라 대통령이 인기영합적인 선심성 정책이나 급진적인 개혁조치를 남발하지 않겠느냐는 당초 우려와는 달리, 현실을 중시하는 보수적 경제정책을 펴 일단은 위기에 처한 브라질 경제의 급한 불을 끄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뜻밖의 보수주의'로 금융시장 안정에 성공했다"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지의 평가는 룰라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적인 해외시각을 잘 나타내고 있다. 룰라 대통령은 인플레이션과 환율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 작년에 이미 세차례나 인상됐던 콜금리를 다시 인상하는 한편,이해당사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연금 개혁과 세제개편을 강력히 밀어붙이고 있다. 덕분에 불과 몇달만에 국가신용도가 상당히 개선됐고 주가도 크게 올랐으며 지난달 수출도 1년전에 비해 27%나 급증하는 등 브라질 경제가 빠른 속도로 안정돼가고 있다. 이같은 성과는 같은 좌파출신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기간산업을 국유화하는 등 급진정책을 강행함으로써 베네수엘라 경제를 파탄지경으로 몰아 넣고 재계 노동계 언론계 종교계 등과 잇달아 마찰을 빚어 내전위기로까지 치달은 것과 대비가 돼 더욱 인상적이다. 중요한 것은 비슷한 배경을 가진 노무현 정부가 룰라 대통령의 성공에서 배울 점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분배와 복지를 강조하는가 하면 노조측에 치우친 시각을 드러내는 등 현 정부의 급진개혁 노선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던게 사실이다. 이같은 우려를 씻고 국내외에서 신뢰를 회복하려면 무엇보다 안정감 있는 정책을 펴는 것이 급선무다.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전 파병결정을 내린 것이 현실주의 노선을 선택한 단적인 예다. 이를 계기로 한·미 갈등이 잦아들고 국가신용도가 회복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건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재벌개혁 노사정책 등 '변화와 개혁'을 무리하게 밀어붙임으로써 재계를 불안하게 하고 있는 측면도 여전히 적지 않은 만큼 개혁정책의 속도조절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가능한 한 선거공약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공약준수에만 집착한 나머지 현실을 무시해선 결코 안된다. 정부는 브라질의 예를 교훈삼아 우리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냉정히 판단하고 보다 현실감 있는 정책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