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rchoi@stepi.re.kr 기술혁신 현상을 연구할 때 고착(lock-in)이라는 개념을 종종 사용한다. 이 용어는 기술혁신활동 및 제도들이 안정성을 확보하게 되면 그 관성에 따라 쉽게 변화하지 않는 경로의존성을 띠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상당기간에 걸쳐 성공적인 결과를 이룩했을 때 그 성공을 이끈 과거의 패턴에 집착하면서 안주하는 경향을 강하게 나타낸다. 이 용어가 특별히 관심을 끄는 이유는 성공이 실패의 씨앗을 잉태할 가능성 때문이다. 즉 특정부분에서 성공했거나 혹은 핵심역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사용했던 문제해결 및 조직운영 방식을 계속 고수함으로써 변화된 환경에 점차 대응력을 상실하여 실패로 귀결된다. 이와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는 고전적 사례가 있다. 과거 IBM은 메인프레임 컴퓨터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였다. 하지만 이에 도취한 나머지 다음 단계인 미니컴퓨터의 진가를 무시함으로써 그곳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였다. 즉 IBM은 미니컴퓨터 및 PC 등 다음 단계의 원천기술들을 그 내부에 충분히 확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메인프레임 컴퓨터 위주의 사고가 지배적임에 따라 그 이후의 컴퓨터 발전경로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IBM은 서비스 위주로 사업을 재편함으로써 기존의 관성을 깨뜨리고 새로운 사업에서 크게 성공하였다. 또 다른 고전적 사례는 스위스 시계산업이다. 스위스 시계 업자들은 기계식 시계에서 유연한 생산체제,가격경쟁력,고수익성 등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쿼츠를 사용하는 전자식 시계의 시장가치와 기술적 장점을 과소평가하였다. 그 결과 일본 전자시계의 거센 도전에 밀려 거의 파산지경에 이르렀었다. 다행히 그 후 새로운 기술들을 적극 받아들이고 이를 전통기술과 연결한 시계들을 개발해냄으로써 이들은 성공적으로 부활하였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절대적인 우위를 누리지는 못하고 있다. 최근 잘 나가는 삼성전자는 DRAM,TFT-LCD,CDMA 등 대량생산제품에서 막강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이 오히려 새로운 품목을 발굴하는 데 발목을 잡지는 않는지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또 최근 반도체 이후 한국을 먹여 살릴 새로운 품목의 발굴에 범국가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을 발굴 추진함에 있어,과거의 성공에 눈이 흐려져 변화된 환경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