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급격한 경기후퇴 때문이라는 분석을 달고 있다. 악재는 겹쳐 온다는 말이 있다. 이라크전쟁 같은 외부 요인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게다가 기업의 설비투자가 위축되고,소비 역시 얼어붙으면서 실물경기가 빠른 속도로 내려앉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 경제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각국의 주가도 이를 반영하여 다우지수의 4.1% 하락을 비롯 영국 독일 등 대부분의 선진국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연초대비 마이너스 14.6%로 남아공 다음으로 주가 하락폭이 컸다. 우리는 97년 IMF 환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경험했다. 기업 구조조정,금융개혁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인 끝에 우리의 경제체질은 놀라울 정도로 튼튼해졌다. 외환보유고는 3월말 현재 1천2백38억달러로 위기 당시 대비 3.6배나 쌓였다. 여기에 삼성전자 등 4∼5개의 세계적인 기업들은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특히 IT산업과 인터넷 인프라는 세계를 선도하는 위치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노출된 악재들 이상으로 우리 경제가 어려워 보이고,실제로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 금융시장의 왜곡현상 때문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돈이 제대로 돌지 않기 때문에 경제가 갈수록 꼬이는 것이다. 결국 경제의 얽힌 실타래를 푸는 실마리는 외생변수의 해소도 중요하지만,국내 금융시장의 정상화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 은행의 BIS비율은 선진국 수준인 11.7%다. 여기에 작년 9월말 20개 전 은행이 흑자를 기록하며 5조4천억원에 이르는 당기순이익을 실현함으로써 향후 발생할지도 모르는 잠재부실을 자체 능력으로 흡수할 수 있는 여력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시중자금이 은행에 편중되면서 자금시장의 균형이 깨져버렸다. 3월말 현재 5백66조원이 은행에 몰려 있다. 투신권의 4배 가까운 규모다. 여기에 금융산업이 그룹계열화되면서 돈이 특정 계열사 안에서만 빙빙 돌고 있다. 이번 카드채 사태처럼 2금융권에서 빠져나간 돈이 은행권으로만 몰려 채권시장은 빈사상태에 이르렀다. 구르는 돌에 이끼가 끼지 않듯이 돈의 피돌기가 선순환을 이루어야만 경제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자금의 '쏠림현상'을 바로잡는 것이 경제회복의 관건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우리처럼 상업은행(commercial banks)이 자금시장을 독차지하는 예가 없다. 투자은행(investment banks),즉 국내에서 우리의 2금융권으로 분류되고 있는 증권·투신과의 직간접적인 연결고리를 통해 일정한 균형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 가계는 은행에 돈을 맡기고 은행은 그 돈을 다시 가계로 돌리고(대출) 있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미국 국민의 자산운용을 보면 예금은 10%대이고 주식이 46%대다. 반면 우리나라는 예금이 62%,주식이 8%대에 불과하다. 더욱이 은행은 2002년 3월말 현재 전체 자산의 고작 1.8%만을 주식으로 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증권산업과 발행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낮은 신뢰도가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현재와 같은 자금시장의 동맥경화현상 아래서는 경제회복이 더뎌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적절한 금융시장의 제도개선과 정책전환이 시급해 보인다. 우리 증시의 고질인 '안전판 부재'도 같은 맥락에서 지적될 수 있다. 기관투자가의 육성과 적극적인 역할 수행이 절실한 대목이다. 물론 정부는 이미 기관의 주식수요기반 확대를 위한 기업연금제도 도입과 연기금 주식투자규모 확대,장기투자자 세제혜택 등 다양한 정책들을 펼치고 있거나 준비중이다. 여기에 시장 참여자간의 역할분담과 적극적인 참여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정책효과는 극대화될 것이다. IMF 위기극복 과정에서의 자금편중 현상이 오늘날 새로운 골칫거리로 대두된 만큼 이번에는 금융산업내 심화된 불균형을 바로잡아 경제의 혈액을 잘 돌게 한다면 우리경제의 회복도 그만큼 쉬워지지 않을까. 덧붙이자면 개혁이란 부수고 다시 세우는 것이 아니라,그야말로 '정상화 (normalize)'하는 것이다. 일시적인 물리력 행사보다는 왜곡되고 편중된 것을 하나씩 바로잡아 가는 것이다.